Chapter 25

이것은 스가랴에게 계시로 보여 준 이상의 한 광경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는 이와 같이 여호와께서 때때로 여러 가지 모습을 보여 주십니다. 예수께서 성령에 의해 광야로 이끌림을 받아 마귀의 시험을 받으실 때에 천하만국을 한눈에 본 것은 육안으로서가 아니라 영안으로 비로소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이 3층천에 올라가 본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때 바울의 육신은 어디 있으나 무방합니다. 나에게 여호와께서 하늘나라의 여러 가지 모습을 보여 주신 것도 이치는 다를 것이 없습니다.

스가랴에게 보여 준 이 이상은 다리오 왕 2년 11월 24일의 계시의 연속으로, 직접 이와 비슷한 체험을 해 보지 못한 사람은 이런 성경 구절에 부딪치면 당황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위대한 신학자나 부흥사도 이런 대목은 무슨 뜻인지 분명히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이 2장 1절에 있는 ‘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그는 천사입니다. 스가랴의 눈에 천사가 한 사람으로 비쳤던 것입니다. 그래서 스가랴는 “네가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가 대답하기를, “예루살렘을 척량하여, 그 길이와 넓이를 알고자 한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이것은 육적으로 길이와 넓이를 잰다는 뜻이 아니라, 백성들이 여호와를 얼마나 경외하는가 하는 믿음의 척도를 헤아려 본다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1장에 보면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되,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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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5

전 밖의 마당은 그냥 두라.”는 말씀이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척량’의 뜻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믿음의 척도, 즉 의(義)의 분포도를 헤아린다는 의미입니다. 성경에는 이와 같이 상징적인 의미로 가려진 데가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당신의 종들에게 보여 주신다고 하더라도, 각자 맡은바 사명에 따라 그 분야가 다르므로, 선지자, 즉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해서 다 아는 것도 아닙니다. 보여 주신 분야에 대해서만 알게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보여 주신다고 해서 다 아는 것도 아닙니다. 때로는 보여 주신 것을 기록한 성경의 저자가 그대로 기록하면서도 무슨 뜻인지 모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니엘이 ‘듣고도 깨닫지 못하여’ 천사에게 질문했더니 “이 말은 마지막 때까지 간수하고 봉해 두어라.”(단12:8-9)고 한 경우가 그렇습니다.

나는 보잘것없는 사람이지만, 여호와께서 씻어 세워 주시고, 마지막에 성서의 종지부를 찍게끔 보여 주시고 가르쳐 주셨기 때문에 알게 된 것입니다. 내가 무슨 수로, 일생을 성경 연구에 바친 위대한 신학자도 감히 풀지 못하는 구절들을 풀 수 있겠습니까? 하긴, 내가 보았다고 해서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모스서에 보면 여기에 대해 분명히 못을 박은 구절이 있습니다. 즉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에게 보이지 않고서는 결코 행함이 없느니라.”(암3:7)는 말씀이 그것입니다.

스가랴 2장 5절에 보면,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그 사면에서 불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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