는 피를 보고 불원에 무더기로 흘려야 할 당신의 피를 연상하는 것이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그가 성령으로 잉태한 것은 알고 있었으나, 그가 처참하게 십자가 위에서 당하리라는 것은 미처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수백 년 전에 여호와께서는 이사야 선지를 통하여 주께서 어떻게 당하리라는 것을 기록해 놓았으며, 주께서는 이 성경을 읽기도 하였습니다.(사53장 참조)
그러므로 설사 하나님의 독생자라 하더라도 육신을 가지고 있는 이상, 마음에 수심과 고민이 없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주님은 여느 사람보다도 한결 늙어 보였습니다. 육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너무나 어려운 생활을 감당해 왔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어떻게 죽으리라는 것을 빤히 내다보고 사는 것이 얼마나 괴로우리라는 것은 경험해 보지 못한 우리는 상상도 못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주님은 사형수였습니다. 설사 주께서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 승천하실 것을 아실지라도, 그 수모와 그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똑같은 사형이라도, 단두대 위에서 잠깐 괴로움을 당하다가 곧 숨을 거두는 것 같은 사형이거나, 전기의자 위에서 눈 깜작할 사이에 저승으로 옮아가는 그런 사형이라면 또 모릅니다. 그러나 주님이 당해야 할 처형은 십자가의 사형입니다. 사형수들은 나무형틀 위에서 갖은 쓰라림을 당하며, 며칠을 신음한 끝에 비틀어 메말라 죽도록 하는 그런 잔인무도한 사형법이었습니다.
30년 동안의 사생활을 마친 주님은 성령에 이끌려 광야에 나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