셔 왔으나, 이제 그는 그 악몽 같은 시련에서 불사조처럼 떨치고 일어났다. 아마도 여호와께서 그를 짐짓 그런 눈보라 속에 던져 키워 왔던가 보다. 세상에서 수욕 받는 자로 칭찬과 명성을 얻게 한다던가.
그는 어디다 놓아도 결코 구겨지는 일이 없다. 그의 명랑한 성격도 성격이지만, 인간됨이 그렇게 순박할 수 없다. 그러나 한편 두렵기 짝이 없다. 누구나 그의 눈에 자기의 정체가 어떤 모습으로 드러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혹시 몰지각한 친구들이 그를 도깨비로 몰아세워도, 그는 소탈하게 너털웃음으로 말아 버리기 그만이다. 악령을 무찌르는 그가 도깨비라면 ‘마귀가 마귀를 내쫓을 수 없다.’(막3:23)는 주님의 말씀은 거짓말이 되고 만다.
하나님은 당신의 경륜을 이루시기 위해, 때에 따라 당신의 종을 땅에 보내어 역사하신다. 그리고 한 종의 사명이 끝나거나, 또는 여의치 않으면 다른 종을 내세우는 것이 상례이다. 예컨대 모세와 여호수아의 경우가 그렇고, 사울과 다윗, 베드로와 바울의 경우가 그렇다.
이영수―나는 이 이름의 주인을 다는 모른다. 그러나 내가 아는 것만 종합해 보아도 놀랍기만 하다. 기독교 역사상 이런 하나님의 종이 몇 사람이나 있었던가?
이 땅에도 일찍이 큰 성령의 역사가 있었다. 그런데 오늘날 그것이 어떻게 퇴화 내지 변모되어 가고 있는가?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