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0

위해 이스라엘 민족을 긴긴 세월 보호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결국 그 민족 가운데 독생자를 배출시켜, 그 민족이 처참하게 아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작업을 하셨습니다. 이렇게 해야만 되는 하나님의 안타까움이 계실진대, 우리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상식을 벗어나야 합니다.

신은 인간의 형상을 입고 지상에 태어나, 인간이 받아야 할 모욕과 천대를 다 당하시고, 최악의 고통을 받으셨습니다. 그것은 주님 자신도 싫어했고, 하나님에게도 눈물겨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끝내 그걸 해냈습니다. 언뜻 생각하면 주님이 십자가를 지신 것이 사람을 위해서인 줄 알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게 아닙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궁극적인 핵심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언제나 하나님 위주라는 것을 여러분은 분명히 아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조건이 모든 조건에 앞서는 것입니다. 마귀를 상대로 하는 싸움에 승리하기 위해 하나님은 독생자를 이 땅에 보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례 요한을 통해 물세례를 받은 그리스도로 하여금 제일 먼저 하게 하신 것이 뭐냐? 마귀를 상대하는 일이었습니다. “성령이 예수를 이끌어 광야로 데려갔더라.”(마4:1) 주님은 성령을 받자마자 마귀를 만났습니다. 사람을 먼저 대한 게 아닙니다.

여기 서 있는 저도 여러분을 대하기 전에 마귀를 만났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일을 하는 사람에게 먼저 마귀를 상대하게 하시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마귀를 상대하기 위해 저도 필요로 하시고, 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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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0

분도 필요로 하시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가 이 땅에 오실 때에 인간의 형상을 입게 하신 것도 마귀와의 싸움을 위한 수단이었던 겁니다. 그것이 아끼고 감추었던 당신의 독생자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야 하는 것이었다면, 이건 최후 수단입니다. 그 이상의 처참한 수단은 없습니다.

제가 여러분께 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나님이 수단 방법을 가리지 말고 알곡을 만들라고 하셨다고. 주님의 십자가 처형은 주의 종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하나님의 역사를 하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됩니다. 하나님이 마귀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입히기 위한 방법이 아들을 처참하게 죽이는 일이었습니다. 이건 하나님의 위치에서 볼 때 최고로 비참한 일입니다. 이 비참한 일을 우리 인류는 최대의 영광으로 알고 고맙다고, 참 잘 하셨다고 찬양했습니다. 그게 나쁘다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처지를 그만큼 몰랐다는 겁니다. 주의 종의 설명을 듣고서야 여러분은 일리가 있구나 하실 겁니다.

그럼 오늘날까지, 하나님이 인류를 창조하셔서 친히 다스리시는 것으로 알고 있는 기독교 신자들에게 영의 문제를 설명하면서, 그게 아니라고 주장했을 때, 일리가 있다고 곧 받아들일 수 있느냐? 아닙니다. 하나님은 만유를 회복하기 위해(행3:21) 역사를 계속하고 계시지, 현재 다스리는 게 아닙니다. 친히 다스리시는 건 메시아 왕국에서입니다.(계20:2)

많은 목회자들과 기독교인 중에서 보잘것없는 이 이영수에게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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