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5

5. 죽음은 또 하나의 시작이다

“만일 죽은 자들이 도무지 다시 살지 못하면 죽은 자들을 위하여 세례 받은 자들이 무엇을 하겠느냐? 어찌하여 저희를 위하여 세례를 받느뇨.”(고전15:29)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포의 대상입니다. 한편, 최고의 의문을 갖게 하는 것이 죽음입니다. 인간은 죽지 않는 방법을 찾기 위해서 무던히도 애를 썼습니다. 또 죽지 않는다는 것은 가장 반가운 말 중의 하나입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요구하는 바가 있을 때에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사람 위주가 되면 하나님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런데 종교를 살아가는 하나의 방편으로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것은 엄밀히 말해서 종교가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나는 매일 죽는다.”(고전15:31)고 말하였습니다. 참으로 옳은 이야기입니다. 이 생활철학을 우리는 교훈으로 삼아야 할 줄 압니다. 바울 시대의 신앙 운동은 하나님을 위하여 죽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날마다 죽는 심정으로 하나님의 일을 했던 것입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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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5

다. 기독교는 희생의 종교입니다 그 결과 영의 세계에 가서 얻어지는 것이 있는 겁니다.

오늘날 기독교는 어떠냐? 영의 세계보다도 대다수가 현실적으로 ‘내게 얻어지는 것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 중심이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을 위해서 사는 것을 뜻합니다. 영의 세계에 대비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믿는 것이 종교지, 현실적으로 어떤 이득을 얻기 위해 믿는 것은 종교가 아닙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6:33)고 했습니다. 선이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자기 뜻대로 사는 것은 선이 아닙니다. 그것은 악입니다. 악을 행하면서도 자기는 최대의 선을 행하는 것처럼 자부하는 사람들이 신자들 중에 너무 많습니다.

사도 바울의 말처럼 우리가 가진 것은 이 세상의 소망이 아니고, 영의 세계의 소망이기에 고생을 달게 받고 있습니다. 날마다 죽는 심정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것은 영의 세계에서 더 큰 축복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만약에 영의 세계, 곧 하늘나라가 없다면, 예수 믿는 사람처럼 억울하고 분통이 터질 일이 어디 있겠느냐는 것입니다.(고전15:19) 그러나 오늘날 예수 믿는 사람은 억울할 게 없습니다. 그들은 거의가 살아 있는 동안에 자기가 만족할 수 있는 복을 추구하면서 예수를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역사에 들어온 여러분만큼은 그렇게 살지 않았습니다. 주의 종을 만난 다음, 여러분은 대다수가 먹을 걸 먹지 못하고,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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