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5

연결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기억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죽어 주님이 데려갈 수 있는 조건이 되어 있으면 하나님은 천사를 시켜서 데려오게 하십니다. 그러나 주님이 데려가실 수 있는 조건이 되지 못하면 다른 신의 종(졸개 마귀)들이 와서 데려가게 됩니다. 이때 그는 자기 실체를 비로소 분명히 알게 됩니다.

“전생에 내가 무슨 죄가 많기에 이런 고생을 해야 하나?” 하고 말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 그러나 전생에 자기가 무엇을 했는지 모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영의 세계에 가서도 자기의 전생을 일일이 다 아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심판대 앞에 나오면 다 나타납니다.

누가 세상을 떠날 때에 세마포를 못 입고 은혜만 받았다면, 천 년이 차기까지 음부에 가서 일단 대기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어둠의 지배자가 그 사람을 데려가게 됩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은혜를 받은 만큼은 건드리지 못합니다. 그게 내가 여러분에게 되풀이하여 말하는 신의 ‘룰’(규례)입니다.

만약에 50%의 성령의 은혜를 받은 사람이 음부로 가면, 어둠은 그 50%는 건드리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마귀에게는 전체를 지배할 수 있는 자보다 달갑지 않습니다. 음부는 빛을 갖지 않아야 유리한 세계입니다. 빛을 가지고 세상을 떠난 사람이 어둠의 세계에 가면, 그는 불청객이므로 어둠의 세력이 별로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학대할 수는 없습니다. ‘룰’이 있기 때문입니다.

66 에덴의 메아리10권
Chapter 5

나는 우리 역사의 초창기에 요한 계시록을 강해할 때, 하나님의 신과 어둠의 세력 사이에 ‘룰’이 정해져 있다는 것을 지적했습니다. 왜 ‘룰’이 정해져 있는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히 ‘룰’이 정해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둠이 사람을 끌어가려면 사람에게 그럴 만한 조건이 있어야 하고, 빛이 사람을 끌어가려면 빛에 속한 사람이라야 합니다. 빛과 어둠 사이에도 이런 함수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어느 정도 이루어졌는가는 심판대 앞에서 나타납니다. 그리하여 염소와 양을 추려냅니다. 염소와 양은 언뜻 보면 비슷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언뜻 보면 다 비슷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심판대 앞에서는 갈라집니다.

예수도 모르던 사람이 세상을 떠나고 하나님의 역사에서 그 사람과 연결된 성도들이 그분을 위해 추도 예배를 볼 때, 그 추도 예배는 심판대 앞에서 비로소 효력을 발생하게 됩니다. 지상에서 살아갈 때에는 새까만 숯덩이에 불과했지만, 추도 예배에서 그를 위해 30%의 변호가 하늘에 올라가 있다면, 30%의 혜택을 그가 입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만일 죽은 자가 도무지 다시 살지 못한다면, 죽은 자를 위하여 세례 받을 필요가 어디 있느냐?” 하고 말한 것입니다.(고전15:29)

죽음은 끝이 아니고 시작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분명히 알고 믿어야 합니다. 누구를 막론하고 이 영의 문제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지 않는 것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유리할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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