렇게 움직여다오, 하는 요구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와 하나님과 마귀라는 3각 관계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이렇게 되다 보니 우리가 하나님만 알고 하나님이 우리만 아는 순조로운 사이가 되지 못하고 삐거덕거리게 됩니다. 하나님이 어둠의 세력을 무찌르기 위해 우리를 필요로 하시게 되니까, 어둠의 세력은 우리를 미워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빛이 우리를 아껴 주시고 사랑해 주실 때는 우리에게 요구 사항이 있는 겁니다. 그 요구 사항이 뭐냐? 어둠을 상대로 해서 싸워 달라는 겁니다. 이러한 조건부가 형성될 때에는 하나님과 우리만의 교류는 불가능해집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교류 자체가 사실상 순조롭지 못하고 가로막힙니다.
그러면 거슬러 올라가 얘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아담, 하와를 지으실 때부터 기대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이것을 태초에 우리를 짓기 전에 하나님이 정하신 뜻이다,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바울은 그것을 하나님이 만세 전에 정하신 뜻이라고 말했습니다.(고전2:7)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지으실 때 누구를 의식하고 지었습니까? 하나님이 심심하니까 대화를 나누려고 지으셨다면 얘기는 간단합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고,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시기 전부터, ‘나와 같은 존재를 만들어서 앞세워 싸워 보자’ 하고 사람을 지었다면, 그 사람은 누구를 상대하는 존재입니까? 마귀를 상대하는 존재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