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8

을 하면 낙원으로 간다고 주장하고, 불교에서는 극락으로 간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경치가 좋은 장소를 낙원과 같은 곳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낙원이라는 뜻은 좋은 곳이라는 얘기입니다. 사도 바울은 낙원에 갔다 왔습니다. 낙원은 셋째 하늘에 있는 겁니다. 여기서 답이 나옵니다. 기독교인들은 제가 한 말은 안 믿어도 바울이 한 말은 믿을 겁니다. 그래서 제가 바울의 말을 인용하는 겁니다.

사람이 죽으면 생전 보지 못한 세계가 나옵니다. 죽었을 때 가는 곳이 자기 집안이면 그의 영혼이 압니다. 자기가 살던 곳이니까. 사람들이 와서 “아이고 아이고” 하고 울고불고하면, 고모가 왔네, 동생이 왔네, 오빠가 왔네, 이렇게 볼 수가 있는 겁니다. 아무리 영혼이라도 자기가 아는 사람이니까 알아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집을 나와서 자기가 살지 않던 미국에 갔다고 칩시다. 그러면 그 영혼은 길을 모릅니다. 하물며 지구를 떠나는 존재가, 첫째 하늘이나 둘째 하늘도 아니고, 그 먼 셋째 하늘에 가는데, 길을 알겠습니까? 모릅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못 갑니다. 못 가기 때문에 끌고 가는 존재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끌려가는 겁니다.

“저는 절대로 끌려가지 않습니다.” 이렇게 장담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건 살아 있을 때의 얘기입니다. 끌려가지 않으면 어디에 있을 겁니까? 자기 집안에 처박혀 있을 겁니까? 끌려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끌려간다는 뜻은 강제성을 띠는 겁니다. 죄수를 잡아서 개 끌 듯 끌고 가는 것은 강제입니다.

94 에덴의 메아리10권
Chapter 8

사람이 죽을 때에 안 가려는 시늉을 한다면, 가는 곳이 편안한 곳이 못되고, 원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안 가려고 하는데, 할 수 없이 끌려갈 때 그 사람의 모습은 편안하겠습니까? 흉측한 모습이 됩니다. 그러나 만약에 좋은 곳으로 간다면, 이 사람은 얼굴에 웃음을 띨 거다 이겁니다.

그럼 바울의 말대로 따진다면 낙원은 어디에 있습니까? 셋째 하늘, 삼층천에 있습니다. 기독교에서는 이 말을 안 믿을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이영수가 미워도 이건 믿어야 합니다. 이 말을 부인하게 되면 성경을 부인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성경을 들고 나오는 겁니다.

그럼, 바울이 간 곳이 셋째 하늘이라면, 첫째 하늘이 있어야 합니다. 물론 둘째 하늘도 있어야 합니다. 그 사람은 자기가 끌려가면서 이건 첫째 하늘이고, 이건 둘째 하늘이고, 이건 셋째 하늘이구나, 하고 느꼈기 때문에 셋째 하늘이라고 말한 겁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이 지구상에서 살고 있으면서 하늘이라고 말하는 것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살아 있는 동안에 첫째 하늘은 알고 있지만, 둘째 하늘하고 셋째 하늘은 모릅니다. 이건 죽어야 압니다.

그럼 삼층천, 즉 셋째 하늘이라는 말은 기독교에서 이미 2천 년 전에 사도 바울이 했는데, 이 시대에 겨우 달나라 간 게 뭐 대단한 일입니까? 바울이 3층천에 갔다 왔다고 해서 그걸 자랑스럽게 느낀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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