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록을 깊이 상고해야 합니다. 그래서 재창조를 목표로 하는 우리에게는 창세기가 하나의 역사서로서 끝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을 영적인 차원에서 해석해야 합니다. 창세기와 요한 계시록은 맥을 같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 66권 중에서 인간에게 필요한 과일에 대한 이야기는 창세기와 요한 계시록에만 나옵니다. 창세기에는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생명나무 실과’라는 말이 나오고, 요한 계시록에도 이긴자에게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줘 먹게 하겠다고 했습니다.(계2:7) 창세기를 알아야 요한 계시록을 알게 됩니다. 기독교의 역사는 시작과 끝이 긴밀히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시발점이 바로 종점에 연결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파와 오메가’라고 합니다.
은하의 세계는 수없이 많습니다. 1초에 지구 둘레의 일곱 바퀴 반을 도는 빛의 속도로 1년 가는 거리를 1광년이라고 하는데, 보통 한 은하계에서 다른 은하계까지는 몇 십만 광년을 가야 하고, 한 은하계 안에 속한 별과 별 사이도 엄청나게 멀다고 합니다. 이런 시대에 창세기를 논한다는 것은 좀 우스꽝스러운 겁니다. 왜냐하면, 창세기는 우주관을 말한 것이 아니라, 지구를 중심으로 태양계를 얘기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천지는 태양계를 뜻하는 것이 아니고, 우주를 뜻합니다. 우주는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방대합니다. 창세기에는 인간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끔 하기 위해 지구를 중심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