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3

은 것을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단이 안 됐습니다. 바울의 말이 오늘날 성경에 기록이 돼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 이것은 내가 어떤 사람의 가르침을 받은 것도 아니고, 전해 내려오는 얘기도 아니고, 예수님이 이 땅에서 하신 말씀도 아니고, 오직 영광의 주님이 나에게 계시로 가르쳐 준 비밀이니, 이 말씀을 거짓말이라고 하여 천사가 와서 왜곡시킨다 할지라도 그 천사는 주의 저주를 면치 못할 것이다.”(갈1:8 참조) 하고 말했습니다.

오늘날 요한 계시록을 해석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내용을 이루어 나가는 시대를 맞이했습니다. 요한 계시록의 내용이 주님이 이 땅에 계실 적에 하신 말씀이라면, 일곱 교회에 편지를 보낼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요한을 통해서 강조하시기를, “내가 전에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노라.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니라. 나는 우주를 지을 때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고, 앞으로도 그대로 있느니라. 이제 내가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라. 너 요한은 내가 새로 전하는 말을 기록하여 일곱 교회에 전해야 한다. 내가 네게 보여준 대로 써 보내라.”(계1:17-20) 이렇게 주님이 강조했습니다.

창세기가 알파라고 하면, 요한 계시록은 오메가가 됩니다. 요한 계시록은 창세기로 다시 돌아가는 겁니다. 쫓겨났으면 돌아가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그 중간에 무수한 변화가 있어도 시작과 끝은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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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3

야 합니다. 그래야 제 자리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끝을 알려면 시작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는 분명히 에덴동산의 가운데에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게 시작입니다.

주님은 요한 계시록에 “이 예언의 말씀을 읽고 듣고 깨달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계1:3) 하고 사도 요한에게 강조하셨습니다. 만일 주님이 이 땅에 계실 때 하신 말씀보다 계시록의 말씀이 중요하지 않다면, 구태여 요한에게 이렇게 강조할 필요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바꿔 말하면 이 예언의 말씀을 읽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고, 지키지도 못하는 자들은 복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요한 계시록의 말씀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에는 상관이 없는데, 이루어질 때에는 그것을 깨닫지 못한 사람들은 복이 없는 쪽이 돼 버립니다. 이렇게 해서 갈라지는 것입니다. 사람이 가르는 게 아니고,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는 겁니다.

우리 주님이 “내가 너희들에게 할 말이 많으나, 못하고 간다. 그러나 다른 보혜사가 오면 얘기를 할 거다.”(요16:12-14)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후 주님이 이상 중에 요한에게 나타나신 겁니다. 그런데 요한의 눈에는 이 땅에 계셨던 주님과는 전혀 다르게 보였습니다. 요한은 해같이 빛나는 분을 보고는 깜짝 놀라서 까무러쳤습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이 죽은 자같이 됐다고 말했습니다.(계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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