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할 때 “바로에게로 가거라.” 하고 하나님은 지시하십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모세가 이루어야 하기 때문에 가라는 겁니다.
“감람나무 역사를 나는 오랫동안 기다렸다. 그게 무너져 나갔다. 내 심정을 알겠느냐?” 주께서 저한테 하신 말씀입니다. “앞선 역사의 주인공이 안찰한 것처럼 너도 안찰을 하여라. 물을 떠놓고 입김을 불면 앞선 역사에서처럼 생수가 되느니라.” 하나는 서서히 거두어 버리고, 하나는 뒤따라와서 오늘날 이렇게 정착이 된 겁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인위적으로는 안 됩니다. “알곡성전을 건축해라.” 해서 여러분들 보시다시피 건축했습니다. 이것 해라, 저것 해라, 하면 그대로 실천합니다.
창세기는 시작이고, 요한 계시록은 이루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전자는 출발이고 후자는 마무리 짓는 겁니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났다면, 다시 들어갈 장소도 역시 에덴동산이 되어야 합니다. 재창조되어 다시 들어갈 때의 모습은 아담, 하와가 창조되었을 때의 모습과 같아야 하는 겁니다.
아담, 하와가 범죄하기 전에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습니다. 즉 하나님과 방불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 권사님이나 집사님 한 분이 돌아가셔서 영의 생명체로 변하여 옛날의 아담같이 만들어졌다고 할 때에는, 그 권사님을 보면 하나님을 보는 것과 비슷합니다.
아담, 하와가 범죄하기 전에는 조물주와 피조물의 관계만 다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