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9

것이 담기게 됩니다. 여러분에게 안찰을 할 때 그 은혜가 옵니다. 이 손을 통해서 주의 것이 나갑니다. 그러나 각자가 받는 은혜의 강도가 다 다릅니다. 손은 똑같이 대는데 느낌이 다 다른 것은 영을 받는 정도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오늘날 실제로 겪는 일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신도 아니고 어떤 사이비 교주처럼, 뭐나 된 것처럼 도도하게 구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주의 종은 사실 그대로 알려 드려서 여러분이 이 시대의 하나님의 역사를 제대로 파악하여 마음의 준비를 하게 하고, 여러분에게 은총을 끼치기 위해서 최대의 노력을 해야 하지만, 그 다음은 주님께 맡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동안 잘 믿지 못한 분이 세상을 떠나도, 심지어 제단에 한 번 나와 보지도 않고 핍박만 하던 사람까지도, 여러분이 원하면 주의 종이 축복한 생수를 통해서 그런 대로 은총을 입고 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 영들은 심판대 앞에 가서 그 생수의 은총 때문에 많은 죄를 탕감 받게 됩니다.

앞으로 우리가 얼마나 삽니까? 십 년만 흘러 보십시오. 이 자리에 앉은 분들 중에도 세상을 떠날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사고로 떠날 분도 계실 거고, 연세가 많아서 떠날 분들도 계실 거고. 영의 세계는 그 순간이 바로 시작입니다. 인간의 이 짧은 생애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 영의 세계가 중요한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우리가 한 생애를 놓고 싸우는 겁니다.

206 에덴의 메아리11권
Chapter 19

영을 모를 때에는 지금 살아가는 세계만 최고로 알고 있지만, 알고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죽음을 의식하지 않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멀쩡하다가도 죽음이 닥치기 시작하면 팍팍 쓰러집니다. 그러므로 죽음이 내일 닥치더라도 떳떳이 맞이할 수 있는 마음의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바울의 말이 그거 아닙니까? “내가 매일 죽노라.”(고전15:31) 매일 죽는 심정으로 살아서 죽음을 기꺼이 맞이하는 심령이 되어야 합니다. 매일 죽는 사람이 세상에 무슨 물욕이 있겠습니까? 소망은 오직 영의 세계에 가려는 것뿐입니다. 그러므로 죽음이 임박하면 “아이고, 내가 이제 죽게 됐구나.” 하고 탄식하는 게 아니라, “이제 내가 달려갈 길을 다 달려갔노라. 내 앞에는 생명의 면류관만 있느니라.”(딤후4:8) 하고 죽음을 달게 맞게 되는 겁니다.

사람은 병들어 심한 고통을 겪다가도 혼이 떠나는 순간에는 평화를 얻게 됩니다. 혼이 딱 떠나는 순간에 자기를 봅니다. 갈 때 자기를 보면서 갑니다. 숨을 거두는 순간, 이미 자기한테 안내자가 와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가는 곳을 모릅니다.

여기 이 권사님이나 박 집사님이 세상을 떠나면 어디로 갈 겁니까? 면목동에 사는 사람은 면목동의 지리밖에 모르고, 영등포에 사는 사람은 영등포의 지리밖에 모르는데, 죽었다고 해서 어디로 갈 겁니까? 갈 데가 없습니다. 그래서 영등포의 자기 집으로 가서 남편이나 자식이 울고불고하는 것을 다 보고 있습니다. 제사를 안 지내

에덴의 메아리11권 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