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같지만 그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생활 방식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생활과는 영적으로 판이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의 언약에 따라 할례를 받아야 하나님께 인정을 받는 시대에 오랫동안 살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이후에 하나님의 새로운 경륜이 펼쳐졌습니다. 지금까지 받아 오던 할례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이렇게 새로운 경륜이 펼쳐지는 시대에는 많은 사람들이 시련을 겪게 됩니다. 왜? 신앙에 큰 변화가 오기 때문입니다. 할례를 받아야만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었던 시대가 지나가고, 누구나 성령을 받기만 하면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침을 받을 수 있는, 육의 할례가 영의 할례로 바뀌게 되는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이것은 신앙의 혁명이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 혁명을 완수한 주인공이 바로 사도 바울이었습니다.

바울은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파란만장한 일생을 보냈습니다. 수천 년 동안 이어 내려오던 할례라는 관례를 폐지하고 새로운 법도를 심어야 하는 그의 고초는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베드로는 하루에 수천 명씩 주님께로 인도하는 놀라운 성과를 올렸지만, 바울은 겨우 한두 명 인도하기에도 바쁘고, 툭하면 감옥에 끌려가 얻어터졌습니다. 바울은 나중에야 “내가 하는 일이 사도들보다 조금도 부족한 것이 없다.”고 설파했습니다.(고후11:5)

24 에덴의 메아리1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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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운동은 양에 있는 것이 아니고 질에 있다는 것을 세상은 모릅니다. 그래서 바울은 전무후무한 하나님의 종 모세가 한 일이 무어냐고 반문했습니다.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수많은 인명을 죽이지 않았느냐? 그런 그에게도 영광이 있었거늘, 하물며 죽어갈 생명을 영생에 이르게 하는 나의 직분이 어찌 영광스럽지 않겠느냐?”(고후3:7-8)고, 자기를 변호한 것이 성경에도 나와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느냐? 양적인 면에서 모세의 위력은 엄청났지만 질적인 면에서는 자기의 사명이 훨씬 더 영광스럽다는 것을 내비친 것입니다.

오늘날 어떤 분들은 앞선 감람나무 역사는 크게 부흥되었는데, 우리 역사는 왜 그렇지 못하느냐고 말하지만, 우리 역사가 질적으로 얼마나 차원 높게 이끌어 가는가를 들여다볼 줄 알아야 합니다. 우선 양적으로 수십만이 모였다 하면 대단하게 보는 것이 오늘날의 신앙 풍토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와 하나님의 입김이 작용하는 역사에 몸을 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깨닫기까지가 어렵습니다. 깨닫는 사람은 이 역사를 소중하게 여기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참 진리의 말씀이 귀에 달갑게 들리지 않는 겁니다. 우리는 일반 종교인들과는 달리,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계2:7)는 그 말씀을 토대로 하여 요한 계시록을 가장 중요시하고 있으므로 귀가 열리지 않으면 들어도 알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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