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

님의 세계로 가게 됩니다. 그 하나님의 세계를 우리는 천국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천국에 간다고 흔히 말하지만, 그 천국에 대한 정의를 내리라면 막막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오늘날 우리는 보다 더 정확한 신앙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에 천국을 알고, 또 거기에 소망을 둘 수 있는 것입니다.

다른 보혜사 성령이 임하시면, 우선 여러분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그리스도와 동행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주의 은혜 가운데 사시다가 이 세상의 장막에서 벗어나는 순간, 즉 육의 생명이 끊어지는 순간에 영의 세계로 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한 생명, 한 생명을 거두어들이는 섭리 가운데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여러분이 가고 있는 신앙의 길입니다.

우리에게는 복과 화가 있고, 또한 죽고 사는 문제가 있습니다. 이 생사화복을 주관하는 존재를 기독교에서는 하나님과 주님으로 봅니다. 그리하여 신도들이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관하는 하나님과 주님이시여” 하고 기도를 합니다. 그러나 저는 여기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 무조건 인류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신다면, 인간으로서 감당할 수 없는 지상의 엄청난 참사들은 하나님께 책임이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영향력에 대해, 즉 인간의 앞날을 좌지우지하는 차원이 어떤 것인가를 좀 더 깊이 알아봐야겠습니다. 그래야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자신의 위치도 알 수 있고, 또 하나님을

36 에덴의 메아리11권
Chapter 3

모르는 이방인의 언동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들에게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검을 주러 왔노라.”(마10:34) 검은 싸울 때 쓰는 무기입니다. 그러니까 주님 때문에 싸움이 일어난다는 얘기입니다. 검을 주신다는 것은 싸움을 붙인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싸우고, 부모와 자식이 싸우고, 형과 아우가 싸우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또 말씀하셨습니다. “빛이 어두움에 비치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요1:5) 빛과 어둠의 관계는 극과 극입니다. 물과 기름입니다. 그러므로 빛과 어둠은 섞일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전기의 플러스, 마이너스의 경우와 같습니다. 전기의 플러스와 마이너스는 만나면 반드시 스파크가 일어납니다. 서로 닿기만 하면 충돌이 일어납니다. 그리하여 불꽃이 튑니다.

세상은 어둠이 주관합니다.(눅4:6, 엡6:12) 이 어둠이 주관하는 세계에 빛이 와서 주관하려고 하면, 어두움을 몰아내고 빛이 들어가야 합니다. 어둠과 빛은 극과 극이므로, 닿게 되면 충돌이 일어납니다. 주님의 “검을 주러 왔노라.”는 말씀은 이것을 가리킵니다. 어둠만 있으면 조용한데, 주님은 어둠에 빛을 심으러 오신 분입니다.

주님은 자신을 가리켜 ‘양의 문’이라고 말씀했습니다.(요10:8) “나는 너희들이 하나님께 갈 수 있게끔 하겠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어둠이 주관하는 생명체를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생명체로 바꿔

에덴의 메아리11권 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