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

놓겠다, 이겁니다. 이때 빛이 어둠 속에서 A라는 사람을 빼내어 다스립니다. 즉 그 사람을 빛이 주관하는 것입니다. 어둠이 주관할 때와 빛이 주관할 때, 사람은 같지만 그 사람의 생각과 말과 소망이 달라집니다. 주관자가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이 빛과 어둠의 관계를 잘 알아야 합니다. 왜정 시대에 일본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지배했습니다. 이 경우에는 일본 사람이 한국 사람을 그냥 놓아두지 않습니다. 일본 사람처럼 만듭니다. 그래서 일본말을 쓰도록 강요하고 창씨개명(創氏改名)도 시킵니다. 지배권을 일본이 쥐고 있는 겁니다. 우리가 일본 사람이 되어서 일본 사람의 지배를 받는 게 아니고, 우리는 분명히 한국 사람인데도 일본 사람의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왜? 점령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빛이 됐든, 어둠이 됐든, 신의 지배를 받게 마련이라고 저는 20여 년 동안 한결같이 주장해 왔습니다. 빛과 어둠은 신을 상징합니다. 그리하여 인간은 어떤 신이 지배하느냐에 따라서 그 신의 영향력 아래서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어둠의 지배를 받는 인간을 빛 가운데로 빼앗으려는 작업을 본격적으로 하지 않을 때에는 아무에게도, “어둠이 너희를 이렇게 지배를 한다. 그래서 이렇게 도로 빼앗아야 한다.” 하고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어둠이 지배하는 인간을 빼앗아서 빛이 지배하게 하려고 할 때에는, 지상에서 그 일을 맡은 종에게,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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둠이 인간들을 어떻게 빼앗아서 지배하고 있으며, 어떻게 도로 빼앗아 내야 한다.”고 설명해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까 어둠의 지배권과 빛의 지배권이 밝혀지게 됩니다.

아담, 하와는 따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의 슬하를 벗어났습니다. 이렇게 되면 아담, 하와는 하나님과 멀어지는데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반드시 빛이 아니면 어둠의 지배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지배받고 싶어 받는 게 아니고, 신이 그렇게 하는 겁니다. 어머니의 뱃속에서 아기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그 아이가 알아서 “나 누구 편이 될래.” 한 것이 아니고, 자동적으로 빛이면 빛, 어둠이면 어둠의 지배를 받게 마련입니다. 어둠의 지배를 받으면 어둠 속에서 자라고, 빛의 지배를 받으면 빛 속에서 자라는 겁니다.

성경에,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마1:23) 하고 쓰여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것입니다. 이때 태어난 아들은 예정한 분의 슬하에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분이 정한 길을 가야 합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생애입니다. 본인이 그렇게 하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 그 배후에 누가 있느냐? 하나님이 계십니다. 즉 하나님이 예수님과 함께하십니다.

마귀가 하나님이 아들에게 예정하신 내막을 알았다고 칩시다. 그래서 예수님이 몇 살 때 어떻게 하나님의 도를 전하고, 어떻게 십자가에 처형당하고, 어떻게 다시 살아나고, 어떻게 하늘에 오르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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