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5

정체를 깨닫는 사람에게는 크게 유리하지만, 깨닫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크게 불리하게 됩니다. 즉 깨닫는 사람에게는 건축의 머릿돌이 되지만, 깨닫지 못한 사람에게는 걸림돌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을 깨달은 사람은 그야말로 형통하는 축복을 받게 되고, 서기관, 바리새인, 제사장들은 주님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에게 주님이 걸리는 반석이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깨달은 사람과 깨닫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이처럼 엄청납니다.

당시에 주님을 알아본 사람들 중에는 미천한 사람이 많았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이나 막달라 마리아의 경우가 그러합니다. 특히 막달라 마리아와 같은 기생은 오늘날 개화된 시대에도 천시하는데, 그 당시에는 사람 축에 끼기도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을 만난 이들 여인은 하루아침에 돌변했습니다. 그야말로 형통하는 길이 열렸던 것입니다. 반대로 주님에 대해 까맣게 모르고 있던 당시의 존경받는 수많은 경건한 신앙인들은 예수님 때문에 하루아침에 몰락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육적으로 보면 판단이 제대로 서지 않습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섭리 때문에 이루어지는 현상입니다. 그렇다면 구원과 멸망이 인간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 인간의 생각으로 판단의 기준을 세울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하나님의 섭리 아래서는 인간의 생각이 도외시됩니다.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인물인데도, 옷이 더

54 에덴의 메아리11권
Chapter 5

러워졌습니다.(슥3:3) 그것은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잘못이 아닙니다. 마귀가 더럽히는 것을 막을 수 없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막을 수 없으면 당합니다. 전쟁에서 한 나라가 다른 나라에 쳐들어가면 점령한 나라가 마음대로 합니다. 점령당한 나라의 왕은 유명무실합니다. 그러니 그 아래 면장이면 뭐하고, 군수면 뭐합니까? 힘을 쓰지 못합니다.

대제사장이 아무리 거룩하고 경건해도, 하나님 편에서 하는 이야기지, 마귀가 와서 더럽히면 속수무책입니다. 더럽히는 존재에게 사로잡히지 말아야 위대한 것도 유지되고, 경건한 것도 지속됩니다. 점령당하면 소용없습니다. 이럴 때에는 우선 점령당하지 않게, 즉 사로잡히지 않게 하는 방법이 있어야 합니다. 또 더럽혀졌다면 그것을 씻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설사 마귀가 더럽혀 놓아도 순식간에 씻어서 거룩하게 만드는 방법을 제시하겠다는 겁니다. 그게 한 돌에 박힌 일곱 눈입니다.(슥3:9)

사람이 볼 때에는 경건한 사람 100명이 중요할지 몰라도, 하나님이 보실 때에는 마귀에게 점령당하지 않는 한 사람이 더 중요합니다. 이것이 신의 요구입니다. 왜 오늘날 어떤 사람은 한평생 경건하게 살았는데 시체가 썩고, 어떤 사람은 경건하게 살지 못했는데 축복 속에 시체가 피어 가는지 아십니까? 신의 섭리 때문입니다. 인간이 잘나고 똑똑한 것하고는 상관이 없습니다. 이 신의 섭리를 모르면 이런 현상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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