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6

아셔야 합니다.

왜 하나님이 이래라저래라 하십니까? 하나님 자신을 위해서입니다. 저는 그 일을 잘하면 잘했다고 칭찬을 받는 거고, 못하면 못했다고 혼나는 겁니다. 저도 여러분과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이 시점에서 저를 통해 하시고자 하는 일이 있기 때문에 저를 세우신 겁니다. 그게 뜻대로 안 되면 저는 하나님께 별 볼 일 없는 자가 됩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말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할례를 전하였던들, 누가 나를 핍박하였겠느냐? 그러나 할례를 폐지시키지 않으면 주의 저주를 면치 못했을 거다.”(갈5:11, 고전9:27 참조) 왜? 그게 주님의 지시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왜 이런 말씀을 드리느냐 하면, 세상 사람들이 선과 악을 자기 생각대로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이게 옳다, 뭐 어떻다, ― 그건 자기 생각입니다. 여기 오신 여러분은 자기 생각대로 살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대로 살아야 합니다.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계14:4) 여러분의 생각대로, 따르고 싶으면 따르고, 따르고 싶지 않으면 등을 돌리고 ― 이런 자세로는 저를 못 따라옵니다. 그런 사람은 결국 떨어지고 맙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알고 모르는 것이 이렇게 천양지차입니다. 알면 따르고, 모르면 역사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체계를 중요시하는 겁니다. 여러분이 이 시대의 섭리를 모르면 결과적으로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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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6

하시고자 한 일이 잘 안 된 걸 보십시오. 모세는 60만 장정 중에서 30만이 됐든 20만이 됐든 수단 방법을 가리지 말고, 끌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야 했습니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끌고 들어갔으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거고, 못 들어가면 하나님께 불영광이 됩니다. 모세는 므리바의 물가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렸습니다.(민27:14) “네가 잘 설득해야지, 이럴 수가 있느냐!” ― 모세는 그걸 못했습니다.

흔히들 하나님은 무한히 자비로우신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천만에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자비롭기만 하신 분이 아닙니다. 그걸 뭐로 아느냐? 여러분, 제가 청량리에서 ‘감람나무다’ 하고 나왔을 때, 앞선 역사의 주인공을 비롯하여 교역자나 교인들이 나를 도깨비로 몰았습니다. 나야 무슨 죄가 있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쭉정이 같은 저한테 기대를 거시고, 수많은 그 사람들을 외면하십니다. 하나님은 역사의 중점을 당신의 뜻에 두십니다. 제가 잘나서가 아닙니다. 저를 통하여 하시고자 하는 뜻이 있기 때문에 저를 보호하십니다.

결국 시간이 지나니까, 거기는 망하고, 여기는 이만큼이나마 지금 살아남았습니다. 그러나 오늘이라도 하나님이 여러분을 별 볼 일 없다고 단정하시는 날에는 우리 역사도 끝나는 것입니다. 저한테, “너 20여 년간 내 일을 해 왔지만, 너의 백성에게 이제는 기대를 못하겠어.” 하고 통고가 내려온다면, 그것으로 끝장납니다. 그게 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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