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니다. 왜 그러냐? 남의 깊숙한 속을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저는 주의 종으로서 남을 판단해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최종 판단을 내려야 할 위치가 저입니다.(요16:8) 여러분이 살아가는 동안에 이건 이렇다, 저건 저렇다, 하고 옥신각신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 주의 종은 “너는 나빠.” 혹은 “너는 옳아.” 하고 바로 말하지 않습니다. 왜냐? 사람의 잘잘못은 신이 아닌 한 금방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말은 한 다리 건너가고, 두 다리 건너가면 보태집니다. 그리하여 괭이새끼가 나중에는 표범으로 변하고, 비둘기가 독수리로 둔갑하기도 합니다. 이때 바로 판단을 내리려면 근원을 찾아봐야 합니다. 즉 원인을 규명하는 겁니다. 그러므로 저는 한쪽 말만 듣고 상대방을 이렇다, 저렇다고 단정하지 않습니다.
주님은 베드로가 “남에게 잘못이 있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면 되겠습니까?” 하고 물었을 적에,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해 주라.”(마18:22)고 대답했습니다. 죄는 인간의 조건입니다. 인간은 죄 가운데 태어났습니다.(시51:5) 그리하여 세상이 온통 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문제는 남이 범죄하는 것을 볼 때, 나도 저렇게 되면 어쩌나 하고 걱정하느냐 하는 겁니다. 이처럼 남을 비판하기 전에 자신을 먼저 돌아봐야 합니다. 남을 비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교만하며,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미워하십니다.(잠16:5)
여러분은 좀처럼 자기 잘못을 뉘우치지 않습니다. 사람은 잘못을 뉘우칠 때 비로소 겸손해집니다. 자기가 아무리 잘한 것 같아도 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