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신끼리는 압니다. 신과 신이 겨루는 겁니다. 신이 얼마나 사람을 필요로 하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존재 가치가 비로소 부각되는 겁니다. 이때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할 것인가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주님은 아버지를 도우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즉 하나님의 뜻을 준행하고자 오신 겁니다. 사람의 뜻을 준행하러 오신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전 세계 기독교 신자들은 구세주가 인간들을 위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고 말합니다. 인간을 위하는 건 나중 얘기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아들을 보내신 겁니다.
그럼 하나님의 뜻이 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 뜻은 마귀를 발등상 시켜, 새 하늘과 새 땅을 이루는 겁니다.(계21:1, 행2:35) 그래서 하나님은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야 하는 초비상 수단을 강구하신 겁니다. 이건 극비의 전략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죄에서 구속하여 구원하는 것은 2차적인 일입니다.
주님은 바울에게 할례 폐지를 지시하셨습니다. 이때 주님이 사도 바울에게 “2천 년 전 아브라함 때부터 시작해서 오늘날까지 받았던 할례를 없애 버려라.” 이렇게만 말씀하시면 바울이 “이게 대관절 무슨 말씀인가?” 하고 이해가 안 갈 겁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설명을 해 주셔야 합니다. 할례를 폐지시키는 이유는 이러저러하다 하고 말입니다. 이렇게 상세한 설명을 해 주셔야 심부름하는 사도 바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