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 민족이 광야에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까지 필요한 법도였습니다. 광야 생활은 여러분이 알다시피 안정된 생활이 아닙니다. 이들은 한군데 정착했다가 다시 옮기는 방랑을 무수히 되풀이하게 됩니다. 이런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마음이 안정되지 못합니다. 뒤돌아보면 애굽에서 살던 미련이 남아 있고, 앞을 내다보면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강압적인 규제가 없이는 이끌어 가지 못합니다. 이들은 인격적으로 대할 사람들이 못됩니다. 유목민은 이방 민족과 어울리면 동화되기 쉽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까지는 율법으로 고삐를 단단히 죄고 엄한 채찍을 가했습니다.
여러분, 신신당부를 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상대를 못 믿으니까 그런 겁니다. 상대를 못 믿을 때에는 신신당부를 합니다.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이러면 못써. 그러면 안 돼.” 하고 말입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율법을 정해 줍니다. 율법이 많을수록 좋은 것이 아닙니다. 율법이 자꾸 줄어들고 없어져야 합니다. 율법은 상대방을 단속하는 겁니다.
집에 울타리를 왜 만듭니까? 도둑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도둑이 없으면 울타리가 필요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성문을 도무지 닫지 않는다.”(계21:25)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것은 상징적인 얘기입니다. 적이 있으면 성문을 닫는 것이고, 적이 없으면 성문을 열어 놓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