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6

엘 민족이 광야에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까지 필요한 법도였습니다. 광야 생활은 여러분이 알다시피 안정된 생활이 아닙니다. 이들은 한군데 정착했다가 다시 옮기는 방랑을 무수히 되풀이하게 됩니다. 이런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마음이 안정되지 못합니다. 뒤돌아보면 애굽에서 살던 미련이 남아 있고, 앞을 내다보면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강압적인 규제가 없이는 이끌어 가지 못합니다. 이들은 인격적으로 대할 사람들이 못됩니다. 유목민은 이방 민족과 어울리면 동화되기 쉽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까지는 율법으로 고삐를 단단히 죄고 엄한 채찍을 가했습니다.

여러분, 신신당부를 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상대를 못 믿으니까 그런 겁니다. 상대를 못 믿을 때에는 신신당부를 합니다.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이러면 못써. 그러면 안 돼.” 하고 말입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율법을 정해 줍니다. 율법이 많을수록 좋은 것이 아닙니다. 율법이 자꾸 줄어들고 없어져야 합니다. 율법은 상대방을 단속하는 겁니다.

집에 울타리를 왜 만듭니까? 도둑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도둑이 없으면 울타리가 필요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성문을 도무지 닫지 않는다.”(계21:25)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것은 상징적인 얘기입니다. 적이 있으면 성문을 닫는 것이고, 적이 없으면 성문을 열어 놓는 겁니다.

180 에덴의 메아리12권
Chapter 16

모세 율법이 뭐냐?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믿지 못하겠다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법을 제정 공포한 겁니다. 우리나라에는 보안법이 있습니다. 우리는 공산국가와 대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공산국가에게 이득을 주는 일을 법으로 금합니다. 그걸 보안법이라고 합니다. 공산국가가 없거나, 혹은 공산국가에게 이득을 주는 일을 하는 사람이 없으면 보안법은 필요 없습니다.

율법에서 해방시킨다는 뜻은 뭐냐? 바울이 증거한 것이 그겁니다. “이제 우리가 율법에서 벗어났으니….”(롬7:6) 기독교는 율법이 가장 중요한 걸로 알지만, 율법에서 해방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율법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율법에 매이면 구원이 없습니다. 그게 무슨 뜻이냐 하면,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알아서 스스로 신앙을 지키는 상태가 되라는 겁니다. 즉 ‘자유 율법’에 따르라는 겁니다.

그럼 모세 율법과 자유 율법이 어떻게 다른가를 봅시다. 모세 율법은 그 법령을 열 명이 됐든, 백 명이 됐든, 또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어린아이든, 노인이든, 똑같이 지켜야 합니다. 일정한 규례를 정해 놓고, 다리가 하나밖에 없는 사람이 어겨도 어긴 거고, 한쪽 눈이 없는 사람이 어겨도 어긴 겁니다. 그러므로 거기에 해당한 같은 형벌을 받아야 합니다. 그럼 일상생활에서 다리가 하나밖에 없는 사람하고, 두 다리가 성한 사람의 행동이 같습니까? 같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모세 율법은 다리가 둘 다 성한 사람이나, 하나밖에 없는 사람이나, 하나도 없는 사람이나, 똑같이 지키라 이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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