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6

니까? 뜻도 모르고 어떻게 행합니까? 그래서 선지자가 있고 주의 종들이 있는 겁니다. 이들이 하나님의 뜻을 백성들에게 전하는 겁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을 이상 중에 하늘을 여시고(겔1:1) “에스겔아, 네가 백성들한테 가서 이렇게 고하라. 나 여호와가 이렇게 했다고 하라.” 백성이 듣든지 말든지 전하라는 겁니다. “그럼 네 시대에 여호와의 지시가 있었다는 것을 그들은 나중에 심판대에서 부인할 길이 없을 거다.”(겔3:11) 하시는 겁니다.

내가 이 역사를 할 때에 제일 먼저 부른 찬송이 243장입니다. 교인 몇 십 명 놓고 말입니다. ‘주의 음성 들은 이 몸, 지금 자기를 버리며 … 십자가를 등에 지고 주의 뒤를 따라가리라.’ 내가 주의 일을 시작한 것이 나 개인의 뜻이 아니라, 주께서 지시하여 나왔기 때문에 그 찬송을 불렀던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왜 인간을 지으셨는지 그 연유를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그 뜻에 호응할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그 윤곽이나마 알고 고생을 함께 나누면서 이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이끌어 가는 역사니까 동참하라는 것이 아니라, 나도 가야 하고 여러분도 가야 하는 길이므로 한 배를 탔다는 것을 강조하고, 이것이 하늘의 뜻이라는 것을 밝힌 겁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그걸 이해하지 못하고, 믿기만 하면 다 되는 줄로 압니다. 그렇다면야 얼마나 좋겠습니까?

70 에덴의 메아리12권
Chapter 6

120문도가 오순절에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을 받은 후에 스데반은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스데반은 주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성령을 받았습니다. 이 성령을 받은 사람들을 잡아 죽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줄 알고 열심히 뛰어다닌 사람이 사울(바울)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한 사람은 예수를 지지하고, 또 한 사람은 예수를 적으로 보았습니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깨달은 스데반은 사울에게 죽임을 당하고,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몰랐던 사울은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하게 되었습니다.(행7:59) 깨닫고 못 깨닫는 차이가 죽고 사는 문제로 엇갈린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깨달은 자와 깨닫지 못한 자 사이는 언제나 물과 기름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에서, 직장에서, 학교에서 한쪽은 핍박하고 한쪽은 핍박을 당하게 됩니다. “무릇 그리스도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는다.”(딤후3:12)고 바울은 말했습니다. 새로운 하나님의 역사를 깨달은 사람은 깨닫지 못한 사람에게 비방과 조롱을 면치 못합니다. 설명해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겁니다.

성령을 받은 스데반이 목숨을 걸고 나가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전하니, 사울은 그를 돌로 쳐 죽이는 데 증인의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제일 열심히 전한 사람이 스데반이고, 그걸 잡아 죽이는 일에 앞장선 사람이 사울이니, 자동적으로 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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