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9

사람들에게 공감대를 형성해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섭리에 동참하여 주님으로부터 이 시대에 해당되는 새로운 지시를 받아 한 단계 더욱 깊은 말씀을 숭상하기 때문에, 그 말씀이 지금까지 보수적인 신학에 젖어 온 사람들에게는 매우 낯선 얘기가 되어, 이단으로 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그런 점도 감안해야 할 것입니다.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도, 예수님의 위상은 세 가지로 구분됩니다. 주님은 인간을 짓기 전부터 존재했던 분입니다. 이것은 성경이 입증하고 있습니다.(창1:26, 요1:1) 즉 그리스도는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말씀의 존재로 계셨던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런 분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셨다고 성경에 쓰여 있습니다.(요1:14) 이 땅에 오시기 전에는 하나님의 아들이 말씀의 존재로 하나님과 함께 계셨지만, 이 땅에 오셨을 때에는 메시아라는 존재로 계셨던 것입니다. 그런 주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 승천하여 멜기세덱의 대제사장으로서 오늘날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마귀가 발등상 되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마22:44, 히1:13) 이와 같이 주님의 위상이 셋으로 구분됩니다.

이렇게 다른데, 하나님은 이 땅에 오시기 전의 아들에 대해 선지자들이나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에게 직접적으로 알려 주신 적이 없습니다. 왜? 알릴 필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일까지 알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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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는 없습니다. 우리와는 직접 관계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에게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 땅에 오시기 전의 하나님의 아들이 어떠한 상태로 계셨든 간에, 하나님에게는 너무나 귀중한 존재로 함께 계신 것을 성경은 간접적으로 나타내 보여주고 있습니다.(요1:1, 17:5)

그렇게 중요한 위치에 계셨던 아들을 일단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야 하는 하나님의 심정을 우리는 헤아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런 극단의 조치를 취하셔야만 했는가? 그리스도가 만백성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오셨다는 것은 부수적인 얘기고,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을 위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 위에 못 박히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러한 조치는 인간 위주가 아니라, 하나님 위주로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종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하나님의 종도 인간 위주로 부르심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위주로 부르신 겁니다. 이렇게 본다면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중점을 두고 있느냐, 그 뜻의 핵심이 뭐냐?’ 이것이 보다 더 중요한 것을 우리는 알게 됩니다.

사람들은 흔히 자기 위주로, ‘이렇게 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겠지.’ 하고 움직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번지수가 맞지 않는 겁니다. 그래서 헛수고로 끝나는 폐단이 많았던 것입니다. 이런 폐단을 줄이기 위해서 하나님의 종들은 시대마다 끊임없이 하나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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