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노라고 하는 우리에게도 하나님과 교류가 없고 연관이 맺어지지 않는다면 가치가 없는 겁니다. 문제는 하나님이 그 시대에 무엇을 어떻게 역사하고자 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겁니다.
그러나 어떤 전략적인 변화가 있을지라도 그 변화가 하루아침에 적용되지는 않습니다. 그것이 적용되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립니다. 왜냐하면 종래의 관행과 선례가 지속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새로운 차원으로 다르게 전개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이 점은 하나님도 잘 아십니다. 감람나무를 하나가 아닌 둘로 책정해 놓은 것도 그 때문입니다. 한 시대에 한 사람으로 모든 작업을 마치기에는 시간이 너무 촉박한 겁니다. 그리하여 단시일에는 도저히 마칠 수 없기 때문에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서는 두 사람을 세울 필요가 있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미리 내다보신 겁니다.
즉흥적으로 한 시대의 역사를 이뤄 나가는 경우에는 그때그때 선지자들을 세우면 되겠지만 독특한 역사를, 다시 말하면 새 시대를 맞으려는 경우에는 양상이 달라집니다. ‘여호와의 아시는 한 날’(슥14:7)이 있다고 한 예언을 이루는 것은 결코 간단한 작업이 아닙니다.
세상에서도 전쟁을 할 때 전략이 노출되면 대단히 불리해집니다. 그래서 그 전략을 캐내고자 스파이들이 몰래 활동하게 됩니다. 운동 경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가 일본과 축구를 할 때에는 당연히 상대방의 기량과 전술을 알려고 하고, 권투 시합을 할 때에는 상대의 장단점을 알고 대처합니다. 이와 같이 지극히 작은 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