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4

깎아 내리는 것으로 오해할 수밖에 없습니다. 높이 받든다고 해서 하나님을 위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실을 알아서 하나님 앞에 득을 드려야 하나님을 위하는 겁니다.

전지전능하다는 하나님이 어째서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야만 구원을 시킵니까? 하나님의 아들은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할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해 주십시오.”(마26:39) 하고 하나님께 기도하셨습니다. 기꺼이 십자가를 지신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를 지기를 싫어하셨습니다. 그러자 전에도 말했지만,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어 아들이 십자가를 지도록 돕게 하셨습니다.(눅22:43) 그렇다면 하나님께 그럴 만한 이유가 없겠습니까? 있다 이겁니다.

하나님이 아들을 죽여야만 어떤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면 그게 보통 일입니까? 대단히 어려운 문제가 있다는 얘기입니다. 우선 이것부터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제가 하는 말이 틀리면 저를 따르실 필요가 없는 겁니다. 이제는 제가 밝힐 건 밝혀야 합니다. 믿어도 그만이고, 안 믿어도 그만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언자들을 통해 아들을 이 땅에 보내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약속대로 처녀의 몸에서 아들이 이 땅에서 태어났습니다. 그 아들이 할 일이 뭡니까? 십자가 지고 죽는 겁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아들을 보내신 겁니다. 거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다 이겁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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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4

이 있을 거다 이겁니다. 그걸 섭리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서 죽여야만 어떤 일을 하실 수 있다면,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에 큰 애로가 없습니까? 있습니다. 얼마나 방해가 크면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면서까지 역사를 하시겠습니까? 2천 년에 이르는 기독교 역사에서 이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 하는 얘기입니다. 하나님의 안타까움을 근황조차 몰랐던 것이 사실 아닙니까? 그저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대속을 위해 십자가를 지러 오신 걸로만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서 죽여야 하는 이유가 있었다면, 그 이유는 누구에게 제일 요긴하겠습니까? 바로 하나님께 제일 요긴한 겁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의 뜻을 준행하는 종교이지, 인간의 비위를 맞추는 종교가 아니다 그 말입니다. 기독교는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받아 잘 먹고 잘살게 하는 종교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뜻을 이루려는 종교가 기독교입니다. 인간이 구원을 받는 것은 2차적인 일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대명사는 ‘임마누엘’입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뜻입니다.(마1:23) 그러니까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를 지신 것은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마귀에게 빼앗긴 인간을 다시 빼앗아 함께하시기 위해서입니다. 빼앗는 것이 간단합니까? 치열한 싸움을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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