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게 되는 순간에는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게 마련입니다. 어차피 죽어야 하는 인생인데, 몇 해 더 살아 봤자 거기서 거기지만, 조금이라도 더 살려고 하는 겁니다. 그 입구에 포플러나무가 한 그루 서 있는데, 닳아서 반질반질합니다. 그건 사형장에 끌려가는 죄수가 안 들어가려고 그 나무를 끌어안고 몸부림치는 바람에 그렇게 윤이 났다고 합니다. 그들이 사형 언도를 받고 사형장에 끌려가는 광경을 목격한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그 죽음 앞에는 정말 숙연해진다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나는 매일 죽노라.”(고전15:31)고 말했습니다. 오늘 죽는 사람이 무슨 욕심이 있겠습니까? 바울은 그날그날을 죽는 심정으로 살았던 겁니다.
어제 제가 우리 교회에서 가장 연세가 많으신 부서인 상록회에 갔습니다. 회장이신 정환택 장로님과 다른 분들이 앉아 계실 때 제가 말했습니다. “벌써부터 돌아가신다던 분들이 아직도 살아 계시는군요. 둘째 감람나무 역사에 오셔서 신앙생활을 하다가 이제 세상을 떠나야 하는 그런 연세들이 다 됐습니다.”
저는 뼈만 남은 회장님에게 “장로님도 주의 종과 헤어지는 순간에, 보시고 싶어 하던 주님을 만나는 기쁨을 맛보시기 바랍니다. 그 세계에 가서 주께서 ‘정환택, 너는 지상으로 다시 나가 살고 싶으냐?’고 물으시면 ‘무슨 말씀입니까? 그 끔직한 지상에 제가 왜 나갑니까!’ 할 정도로 그곳은 정말 화려한 세계입니다.” 내가 이런 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