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8

오르게 되는 순간에는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게 마련입니다. 어차피 죽어야 하는 인생인데, 몇 해 더 살아 봤자 거기서 거기지만, 조금이라도 더 살려고 하는 겁니다. 그 입구에 포플러나무가 한 그루 서 있는데, 닳아서 반질반질합니다. 그건 사형장에 끌려가는 죄수가 안 들어가려고 그 나무를 끌어안고 몸부림치는 바람에 그렇게 윤이 났다고 합니다. 그들이 사형 언도를 받고 사형장에 끌려가는 광경을 목격한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그 죽음 앞에는 정말 숙연해진다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나는 매일 죽노라.”(고전15:31)고 말했습니다. 오늘 죽는 사람이 무슨 욕심이 있겠습니까? 바울은 그날그날을 죽는 심정으로 살았던 겁니다.

어제 제가 우리 교회에서 가장 연세가 많으신 부서인 상록회에 갔습니다. 회장이신 정환택 장로님과 다른 분들이 앉아 계실 때 제가 말했습니다. “벌써부터 돌아가신다던 분들이 아직도 살아 계시는군요. 둘째 감람나무 역사에 오셔서 신앙생활을 하다가 이제 세상을 떠나야 하는 그런 연세들이 다 됐습니다.”

저는 뼈만 남은 회장님에게 “장로님도 주의 종과 헤어지는 순간에, 보시고 싶어 하던 주님을 만나는 기쁨을 맛보시기 바랍니다. 그 세계에 가서 주께서 ‘정환택, 너는 지상으로 다시 나가 살고 싶으냐?’고 물으시면 ‘무슨 말씀입니까? 그 끔직한 지상에 제가 왜 나갑니까!’ 할 정도로 그곳은 정말 화려한 세계입니다.” 내가 이런 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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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8

했습니다.

그런데 정 장로님 얘기가, 곧 죽을 것 같아서 날마다 죽음에 대비하여 주님 앞에 눈물겹게 회개한다는 겁니다. 이렇게 하면 하늘에 둥둥 뜨는 듯한 기쁨이 자신에게 온다고 합니다. 그래서 오래 사는 것 같다는 겁니다.

사람은 죽음이 한없이 먼 장래에 있다고 생각하면 미련이 많습니다. 그러나 ‘주의 은총으로 지금까지 행복하게 살아왔다.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전에도 말씀드린 적이 있지만, 바울은 죽음을 눈앞에 두고 “내가 달려갈 길을 다 달려가고, 이제 나에게는 의(義)의 면류관만 남았다.”(딤후4:7-8)고 말했는데, 참으로 위대한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한평생을 살면서 ‘내가 달려갈 길을 다 달려갔다.’고 말하기가 결코 쉬운 것이 아닙니다. 정말 죽음이 눈앞에 다가오면 누구나 후회가 앞서는 겁니다. 그러나 바울은 결코 죽음을 눈앞에 두고 후회하는 생활을 하지 않았습니다.

같은 하나님의 종이라도 솔로몬의 경우는 다릅니다. 그는 “세상만사가 헛되고 헛되니, 헛되고 헛되다.”(전1:2)고 말했습니다. 한 생애를 주의 종으로 살아오면서도 어떤 종은 희열이 만만하여 죽음을 맞이하고, 어떤 종은 허무를 느끼면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자리에 앉으신 여러분들이나, 앞으로 오실 분들이 어떤 태도로 생애를 마칠 것이냐가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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