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3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려면 한두 가지 계시를 받아 가지고는 못합니다. 만날 똑같은 얘기를 써먹는다면 모르지만. 단에서 설교하는 사람은 누구나 양떼들에게 새로운 말을 전하고 싶은 겁니다. 그래야 사람들이 지루하지 않게 들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아서 안 합니까? 만날 비슷한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아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 66권 가운데 가장 알기 힘든 것은 계시록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시를 받게 되면 내용을 알게 됩니다. 그냥 들여다보이는 겁니다.

높은 산에 올라가서 내려다본 사람은 세상을 넓게 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얼마나 넓습니까? 그러나 외계에 나가서 지구를 보면 조그마합니다. 우물 안의 개구리는 우물이 세계인 줄 압니다. 그러나 세계에 비하면 우물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늘의 세계를 보지 않으면 성경은 깊이 들여다보이지 않습니다.

하늘의 세계가 어디냐? 요한 계시록의 내용입니다. 요한 계시록을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은 하늘의 세계를 안다는 얘깁니다. 그리고 하늘의 세계는 신과 신이 겨루는 세계입니다. 요한 계시록에 “이 예언의 말씀을 읽고 듣고 깨닫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으니, 그 내용이 주님이 이 땅에 계실 때 하신 말씀입니까? 이 땅에 계실 때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그런데 왜 요한은 이 계시의 내용을 알고 듣고 깨달아서 지키는 자

240 에덴의 메아리14권
Chapter 23

가 복이 있다고 강조하느냐? 창세기부터 유다서까지 물론 훌륭한 말씀이 많습니다. 요한 계시록은 뭐냐?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이자 나중인 주님으로 말미암은 책입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요한 계시록을 거추장스럽게 여깁니다. 신학자들이 내용을 압니까?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요한 계시록을 올바로 설명하려면 영적으로 깊은 차원에 도달해야 하는 겁니다.

세상 얘기라면 간단합니다. 그러나 계시록은 세상 얘기가 아닙니다. 일반교회에 다니는 분들에게는 이상하게 들리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제가 조심하는 겁니다. 많이 얘기해 봤자 나만 병신 되기 때문에.

니고데모가 주님하고 대화하는 장면을 여러분에게 전에도 설명했습니다. 니고데모가 창피해서 밤에 주님을 만났습니다. 학자로서 목수의 아들에 불과한 사람을 만나서 대화를 하면 자존심이 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뭔가 특이한 존재라고 생각하기에 대화를 해 보려고 온 겁니다. 이때 주님이 말씀하신 것만 성경에 기록됐지만, 결코 간단한 얘기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도 그런 경우를 많이 겪습니다. 한두 마디만 색다른 얘기를 하면 상대방의 눈빛이 달라집니다. 자기가 생각했던 차원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니고데모가 주님과 대화를 하면서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주님은 상대의 마음속을 들여다봅니다.

에덴의 메아리14권 2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