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 전혀 다릅니다. 양상이 바뀝니다. 이렇게 바뀌는 시대에 보수와 혁신은 어쩔 수 없이 부딪치게 됩니다.
같은 시대에 사는 바울과 베드로도 부딪쳤습니다. 베드로는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바울은 할례를 받을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은 당시의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으셨습니까? 천만에 말씀입니다. 사형을 당했습니다.
스가랴서에 하나님이 “사단아!” 하고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을 스가랴가 기록한 겁니다. “사단아, 네가 내 종 여호수아를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같이 만든 놈이 아니냐?”(슥3:2) ‘너는 더럽히는 존재다.’ 이것입니다. 그래서 사단을 꾸짖습니다. 이렇게 꾸짖고 나서 시커멓게 만든 것을 ‘내가 정결하게 만들어 놓겠다.’는 겁니다. 이것은 사람과 하나님 사이의 대화입니까? 하나님과 마귀의 대화입니다.
주님이 하늘나라에 가서 가장 바라시는 것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마귀가 발등상 되게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상대가 사람입니까? 신입니다. 신이 신을 상대하는 겁니다. 주님은 마귀를 상대로 싸우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마귀를 발등상 시키는 작업을 하는 것이 주님을 믿는 우리가 해야 할 소임입니다. 누가 기다리시기 때문에? 주님이 기다리시기 때문입니다.(시110:1) 주님이 직접 싸우신다면 기다리신다는 말이 필요 없습니다. 직접 싸우시는데, 뭘 기다립니까? 기다린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