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위복이 되었습니다. 뭐냐? 십자가를 지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겁니다. 세례 요한을 죽여 버리는 당시의 권력이면 예수를 죽이는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세례 요한은 여간해서는 죽일 수 없는 제사장 가문의 아들입니다. 그를 죽이는 사례를 남겼기 때문에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기가 한결 쉬웠다 이겁니다.
주님은 십자가를 져야 할 분입니다. 이사야가 예언한 대로 여호와께서 우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케 하신 겁니다.(사53:6) 그는 세상 죄를 지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아들은 가야 할 길이 정해져 있습니다. 그런데 만인이 우러러보는 위대한 존재로 이 땅에 오셨다면 그런 길을 갈 수 있습니까? 못 갑니다. 하나님의 각본이 되어 있으면 하나님의 아들일지라도 그 길을 갈 수 있도록 하나님이 여건을 만들어 주셔야 하는 겁니다. 그 여건을 위해 하나님의 아들일지라도 천사보다 못한 존재로 오신 겁니다.(히2:9) 그러므로 주님은 사람들의 눈에 위대하게 보이지 않습니다. 그게 하나님의 각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인데, 어떻게 감히 죽일 수 있느냐? 이렇게 되면 하나님이 할 일을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로 하여금 십자가를 지고, 처참하게 죽을 수 있게 하신 겁니다. 주님은 부활하셨습니다. 주님의 부활이 곧 우리의 갈 길입니다. 우리는 이 길을 따라 영원히 다시 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