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7

떠나기 전에 살던 사람하고 우리가 같겠습니까? 전혀 다릅니다. 신의 섭리에 의해서 변화가 일어난 겁니다.

지금 여기에 나타나 있는 이 말씀들은 메소포타미아(수메르-이라크) 문명 시대, 상형문자를 사용할 때의 인간에 대해서입니다. 그 지역을 시발로 해서 사람들은 지구에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인류의 시작이 6천 년 전이라면, 6천 년 이전에는 인류의 흔적이 없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중국에서 출토되는 유물들은 2만 년 전, 3만 년 전의 것들입니다. 그러니 이것을 어떻게 답변할 거냐 이겁니다. 이 정도로 밝혀내는 시대가 됐으니, 성서도 과학적인 측면에서 얘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무작정 따르라는 것은 옛날 얘기입니다. 지금은 그게 안 통합니다. 거부반응만 일으킵니다. 그러므로 사실을 상세히 밝혀 성서의 기사가 옳다는 이유를 제시해야 합니다. 그걸 주의 종이 지금 하고 있는 겁니다.

창세기에 에덴동산이라는 곳이 나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최초로 교류한 사람은 아담입니다. 그리하여 성서는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런데 인류 문명의 역사와 대조해 보면 성경의 시기는 맞지 않습니다. 그래서 신학자들과 과학자들 사이에 논란이 일어나는 겁니다. 그 해석을 올바로 하게 되면 신학자들과 과학자들이 싸울 이유가 없습니다.

인류의 생활과 성서 문명의 기원이 다른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성서 문명은 6천 년 전에 시작되고, 인류의 생활은 수만 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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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7

에 시작되었습니다. 문제는 하나님과 인간이 교류하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다시 말해서 사람과 어떻게 교류하기 시작하여 오늘날까지 내려왔으며, 현재는 왜 이렇게 교류하시는가? 이것이 우리에게 중요한 문제입니다.

다른 시대에 어떻게 했든, 그게 우리하고 직접적으로 상관이 있습니까? 죽고 사는 문제가 우리의 당면한 과제인데, 모세가 아무리 위대했으면 뭐하고, 엘리야가 아무리 신령했으면 뭐합니까? 그들이 지금 우리를 살려줄 겁니까? 그들이 여러분한테 안찰하러 올 겁니까? 살고 죽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 죽지 않고 살아 보자, 구원받아 보자, 막연하게 이런다고 되는 시대는 지났다 이겁니다. 그럼 지금 여기서 그 이유를 따져 봅시다.

성경은 ‘하나님의 아들들’이라는 칭호를 붙였던 사람들에게서 하나님이 떠나신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왜 떠나셨느냐 하면, 사람의 딸들을 좋아하였기 때문입니다. 에녹 같은 사람은 300년이나 하나님이 가까이 지내다가 땅에서 죽게 하지 않고 데려가셨다고 성경에 나와 있습니다.(창5:23) 이렇게 같은 인간인데 우리와 다른 경우가 있었다는 것을 우리가 일단은 알고 넘어가야 합니다. 그래야 여러분이 이해가 빠르실 겁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다른 사람은 물위로 걷지 못했는데 주님은 걸어가셨습니다. 그분은 우리와 같습니까? 다릅니다. 그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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