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를 알아보는 것은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성서에 나와 있는 감람나무에 대해서는 아무도 부인하지 않습니다. 그런가 보다 하고 읽습니다. 그러나 그 당사자가 누구다 할 때는 문제가 달라집니다. 그리하여 감람나무를 알아보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메시아의 경우는 안 그랬습니까? 역대의 제사장들이 메시아가 오실 거다 하고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정작 메시아가 오니까 십자가에 매달아 죽였습니다. 성서적인 인물이 나타났을 때, 이것을 알아보고 믿는다는 것은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주께서, “내가 아브라함보다 먼저 있었다.”고 말씀하시자 “나이 50도 못된 놈이 허튼 소리만 한다.”고 돌로 치려고 하니까 주님이 몸을 피하셨습니다.(요8:58-59) 그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얘깁니다. 육적인 것과 영적인 것의 차이점은 바로 이런 데서 나오는 겁니다.
그럼 여기서 보겠습니다. 감람나무니 이긴자니 하는 말이 성서에 있습니다. 게다가 성서에 빼지 말라는 단서가 붙어 있으니까 두려워서 빼지도 못합니다.(계22:18 참조) 앞선 감람나무를 따랐던 9만의 숫자를 상대하여 여호와께서 필요로 하는 군병을 길러 내는 것이 우리 역사의 기본 과제입니다. 이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오늘날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우리가 성전도 건축하고, 주변 환경도 조성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