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4

대로 행동할 수 있을까, 하고 의문이 앞섰던 겁니다.

“네가 따로 해라.” 나는 기가 막혔습니다. 납득할 수 없었던 겁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았지만, 하나님의 역사가 그럴 만한 처지에 놓여 있었습니다. 이미 그때 그분은 딴 신과 손을 잡고 있었던 겁니다. 그러니 그분이 주님의 말씀을 거역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울은 이스라엘 초대 왕으로, 나라를 부강하게 만든 인물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교만하여 제사장 직분을 수행하자,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후계자로 삼게 되니, 사울은 다윗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상대방이 자기의 적수가 되어 겨루게 되면 둘 중 하나는 사라지게 마련입니다. 왕은 둘일 수 없습니다. 언제나 하나입니다.

여러분들, 세조, 즉 수양대군이 눈물을 머금고 단종을 죽였습니다. 단종은 조카입니다. 단종이 죽으면 자기가 사는 거고, 단종이 살면 자기가 죽어야 합니다. 둘 중의 하나는 죽게 되어 있습니다. 일반인들은 ‘왜 죽이느냐?’ 이렇게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게 아닙니다. 둘이 공존할 수 없습니다. 둘 중에 하나는 사라져야 합니다. 그래서 결국 단종을 죽였습니다.

성서에 보면 기드온이라는 명장이 등장합니다. 그의 아들 아비멜렉은 70명의 형제를 죽이고 세겜 왕이 되었습니다.(삿9:56-57) 나머지 형제들을 한 명이라도 살려 두면 자기 자리가 위태롭다 해서 죽인 겁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우리 인간으로는 상상하지 못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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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4

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가나안 민족의 몰살입니다. 하나님은 필요하다면 인륜 같은 것은 무시해 버립니다. 하나님 앞에는 인간의 윤리, 도덕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마귀를 처단하기 위해서는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서 비참하게 죽이는 일도 서슴지 않고 하십니다. 그 나머지는 그야말로 게임이 되지 않습니다. 마귀를 상대해서 싸우기 위해 자식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수단도 동원하는 하나님이시라면, 그 나머지 하나님의 종들에게 무슨 수단인들 지시하지 않겠느냐, 이겁니다. 이건 우리 인간으로서는 뭐라고 판단할 수가 없는 겁니다.

그런데 일반교회는 마귀가 뭔지 잘 모릅니다. 하나님만 압니다. 이때 하나님은 만사형통입니다. “주여, 믿습니다. 아멘.” 하면 끝납니다. 뭐 거기에 딴 게 필요 없습니다. 집안 잘되고, 몸 건강하고, 그러면 되는 겁니다. 그들은 예수 믿으면 됐지, 그 이상 따질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릅니다. 여러분들은 여기 전쟁하러 오셨습니다. 믿느냐 안 믿느냐가 아니라, 죽느냐 사느냐가 문제입니다. 우리 주께서,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생명이 없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깊은 내용을 일반교회는 모르고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부뚜막의 소금도 넣어야 짜다.’는 우리나라의 속담을 인용하고,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보배로운 피를 흘렸어도, 그 피가 우리와 연결이 안 되면 주님의 십자가는 우리와 상관이 없다고 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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