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이 아무리 호의호식을 했다고 해도 여름에 찬 음식을 먹을 수 있었겠습니까? 못 먹습니다. 당시에 냉장고가 있기를 합니까? 솔로몬이 부귀영화를 누렸다고 해 봤자 얼마나 누렸겠습니까? 티코라도 타고 다닐 수 있었습니까? 없었습니다. 고작해야 마차를 굴렸을 뿐입니다. 그때와 지금은 시대가 다릅니다.
하나님이 선지 성인들에게 이렇게 될 것이다 하고 예고를 해 주시는 차원에서 상대할 때하고, 그것을 이루는 주의 종이 움직일 때는 상황이 다릅니다. 사도 요한에게 지시한 이긴자의 역사는 이전과는 크게 다릅니다. 비교가 안 됩니다. 따르는 숫자가 많고 적음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숫자는 상관이 없습니다. 어떤 존재냐가 문제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점을 잘 모르고, 오해하고 있는 겁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능력보다 자기 힘에 의지하려고 인구조사를 했을 때, 하나님이 진노하여 다윗에게 물었습니다. “네가 석 달 동안 쫓겨 다닐래, 백성이 7년 동안 시달리게 할래?” 다윗이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자신이 어려움을 겪는 게 싫었습니다. “저는 후자를 택하겠습니다.” 그리하여 백성들이 수만 명이나 죽어 나갔습니다.(삼하24:13-16) 자기가 범죄하고 왜 벌을 백성들에게 돌립니까? 자기에게 어떤 형벌이 와도 하나님 앞에 용서를 빌어야 했었습니다. “나는 벌을 안 받겠습니다.” 하고 피하는 것과 용서를 비는 것 중에, 어느 쪽을 하나님이 더 어여삐 보셨겠습니까?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