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5

사람을 찾게 돼 있습니다. 그렇게 신이 사람을 찾을 적에는 신이 주도권을 행사하게 되고, 사람이 신을 필요로 해서 찾을 적에는 사람이 주도권을 행사하게 됩니다. 이렇게 종교는 두 가지로 갈라집니다.

교회에 나가면 이런 이득이 있다 해서 나갔을 때, “나는 교회에 나가서 이러저러한 도움을 받았다. 그러니 당신도 믿으면 이러저러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이렇게 자기중심에서 신을 찾게 됩니다.

그런데 신이 사람을 필요로 하는 종교는 그렇지 않습니다. 거기에는 인간이 바라는 바도 있고, 바라지 않는 바도 있습니다. 이때 연단이 없이는 떨어집니다. 신의 역사는 언제나 훈련을 필요로 합니다. 그런 훈련을 성서에서는 연단이라고 말합니다.

하루아침에 신과 친해지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신이 사람과 접근할 때에는 시험을 합니다. 신끼리의 전쟁에서 사람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서로가 사람을 뺏으려고 합니다. 상대에게 뺏느냐, 뺏기느냐에 따라 치명적인 결과가 온다는 것을 신은 잘 압니다. 그러다 보니까 신끼리 전쟁할 때에는 대립이 대단합니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그것을 신의 역사를 해 보면 알게 됩니다.

사람이 신을 필요로 해서 모여 가지고 신을 경배할 때에는 사람이 주동이 되니까 다툼이 적습니다. 그러나 신이 사람을 필요로 할 때에는 치열한 경쟁을 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나가기 위해 백성들이나 선지자들을 하나님이 택하여 쓰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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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5

자 할 때에는 사단이 이것을 못 하게 하기 위해 치열한 방해 공작을 하게 되는 겁니다.

이렇게 끊임없이 서로 뺏고 뺏기는 싸움은 하나님이 인간을 짓기 전부터 있어온 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셔 가지고 뜻대로 쓰시고자 할 때 악령은 가만있지 않습니다. 생명과일에 반대되는 선악과라는 것을 만들어서 도전하는 것이 마귀입니다.

하나님이 필요해서 사람을 지으셨는데, 마귀는 그 지은 사람을 하나님의 필요한 도구로 쓰지 못하도록 방해를 하여 결국은 꺾어 놓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신끼리 하는 전쟁의 양상입니다. 심지어 하나님은 나중에, “내가 왜 사람을 지었던고.” 하고 한탄하실 정도입니다.(창6:6)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시고, 못하시는 것이 없다고 가르치는 기성교회에서는 감히 말할 수 없는 얘기입니다. 교회에 나오면 무조건 ‘구원 받았다.’ 이렇게 얘기합니다. 또 그렇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신의 섭리는 그렇지 못합니다.

신이 직접 움직이는 그러한 섭리가 있을 적에는 싸움이 치열합니다. 이 전쟁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일들이 많습니다. 전쟁은 무자비한 겁니다. 왜 그러냐? 내가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상대방에게 죽임을 당하기 때문입니다.

조용히 예수나 믿고, 하나님이나 섬긴다면 마귀가 괴롭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마귀가 치명적인 타격을 입는 여건이 마련될 때에는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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