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3

이들은 ‘에이, 이 괴로운 세상이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이렇게 생각하고, 그 다음에 영의 문제를 그야말로 도통했다 할 정도로 영의 세계, 사후 세계를 정확하게 믿는 사람들에게는 현실의 죽음이 그렇게 두렵지만은 않게 느껴질 겁니다.

아픈 사람도 두 가지 부류가 있습니다. 너무 고통스러우면 “빨리 죽게 해 주십시오.” 이렇게 말하기가 일쑤이고, 또 좀 더 좋은 세상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은 빨리 낫기를 바라게 됩니다.

어쨌든 죽음은 불가사의한 문제 중의 하나입니다. 나이가 들었든 새파랗게 젊든, 잘살든 못살든, 죽음이 눈앞에 닥쳐올 적에는 자연히 공포를 느끼게 됩니다. 왜 공포를 느끼는가? 바로 현실 세계와 다른 또 하나의 세계가 있다고 알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자기가 살고 있는 주위 환경 속에서 자신이 떠난다는 아쉬움 때문에 더욱 죽음을 두려워하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주님은 죽음에 대해, 잠깐 자는 데 불과하다고 말씀했습니다. 사도 바울도,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소리에 일어나게 된다.”(고전15:51) 여기서 바울은 마지막 나팔소리에 큰 호기심을 갖고 있습니다. 마지막 나팔소리라는 말이 자세히 나오는 것은 요한 계시록입니다. 첫째 나팔부터 일곱째 나팔까지가 나와 있습니다.(계8:2) 그래서 마지막 나팔은 일곱째 나팔을 말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목회자들이 죽음에 대해 정의를 내려서 양떼들에게 설교하고 싶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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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3

만, 답이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서 자체에 답이 나와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제자들이 주님에게 죽음에 대해서 실제로 의문을 제기했던 겁니다.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나를 믿다가 죽게 되면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겠다.”(요6:40) 이렇게 말씀하시니까 “그 마지막 날이 언제입니까?” 하고 질문했습니다.

사람들은 영을 의지하고 믿기 때문에 죽음에 대해서 호기심이 큽니다. 우리 식구들이 저한테 영의 문제를 배우고도, 몸이 아파서 죽음에 이르게 되면 정신적으로 혼란스러워집니다. “내가 죽게 되면 어떻게 될 건가?” 여기 계신 분들도 그런 의문을 안 갖는다면 거짓말입니다. 많은 분들이 죽음이 임박하면 나와 대화를 나눕니다. 제가 얘기를 해 줍니다. 그러나 사실 100% 믿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제가 전에도 얘기했습니다만, 돌아가시기 전에 친하게 지냈던 정우현 선생님 같은 사람에게, 죽음을 눈앞에 두고 내가 설명을 했습니다. “돌아가시기 전에 주님 앞에 하실 일을 하십시오.” 그러나 상대가 그걸 다 믿어 주지 않습니다. ‘주의 일을 열심히 하게 하려고 이렇게 말하는 거다.’ 여러분의 위치에서는 이렇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현실 세계에서 제가 이끌어 가는 하나님의 역사에 어떤 이득을 도모하고자 상대방에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는 것이 아니고, 정말 그 사람이 나하고 친하고, 내가 그 사람에게 도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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