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져 앞을 가렸습니다. 돌이켜보면 17년이라는 긴긴 세월을 헛수고를 했구나 하고 생각하니 원통하기 짝이 없었으나, 결코 실망하지는 않았습니다. 새로운 소망이 가슴에서 꿈틀거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제직회를 열어, 사랑하는 성도들에게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고 사무인계를 마친 다음, 이튿날 청량리 에덴성회에 몸을 담게 되었습니다.

내가 전도관을 등진 것은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누가 쫓아낸 것은 더구나 아니었습니다. 내 발로 전도관에서 나왔던 것입니다. 그 이유를 대략 간추려 말씀드리면 이러합니다.

첫째, 성령으로 시작한 역사가 육으로 기울어졌습니다.
둘째, 재림주를 영접한다는 제3신앙촌(부산 기장)에는 불신자인 사회인이 득실거려 세속화되었습니다.
셋째, 주의 종의 권능이 점점 약화되어 초창기의 위력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넷째, 주의 종이 하는 일마다 벽에 부딪치고, 사고를 일으키며, 쇠망하여 갔습니다.

다섯째, 하나님의 백성들 사이에 초창기 사랑은 찾아볼 수 없고 시기, 질투, 분쟁, 모략 등이 팽배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이래서 전도관을 떠나, 성경 말씀 그대로 이어지는 새로운 역사인 에덴성회로 발길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이때 내가 제일 뼈아프게 느낀 것은 신앙 동지로부터의 멸시와 욕설이었습니다. 그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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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로 나에게 새로운 별명이 하나 더 붙게 되었으니, 그것은 ‘하 도깨비’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조금도 원망스럽게 여기지 않습니다. 날이 가고 때가 오면 누가 도깨비인지 분명히 알게 될 터이니 말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오직 그들을 위해 주님에게 기도할 뿐입니다. 아무튼 나는 17년 동안의 목회생활을 통하여 많은 시련을 겪었으며, 이제 와서 생각하니 그것이 내 신앙을 키우는 좋은 밑거름이 된 것이 사실입니다.

전도관에서 나오기 전, 수많은 교역자들이 자신들의 천국 소망이 무너지므로 낙심하여 타락하고 유리방황할 때, 나는 김유정 권사님(이영수 총회장의 어머니)의 권고를 받아 이영수 휴직 전도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 전도사는 내가 동대문 관장으로 있을 때 내 밑에 전도사로 있었기에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만났으나, 그는 자신이 제2의 감람나무 사명을 맡은 자임을 한마디도 비치지 않았습니다. 그날 최병식 전도사를 연결시켜 주어서 오랜만에 많은 대화를 나누던 중, 그를 통해 제2의 감람나무에 대한 내용을 듣게 되었을 때, 반신반의의 감정이 교차되었습니다.

그 무렵 (1973년) 기장신앙촌에 축복을 받기 위해 갔다가, 청량리 전도관 출신 이계진 전도사를 우연히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하 관장님, 도대체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이영수 휴직 전도사를 복직시켜 놓고, 일주일도 못되어 도깨비로 몰아 버렸으니 말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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