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9

처럼 편안하더군요. 그래서 그날 저녁에 집에 와서 생각해 보니, 설교 말씀이 좋았습니다. 전 역사는 구절만 읽으시고, “때가 되면 설명한다.” 하시며 중요한 말씀은 설명을 안 하고 미루셨는데, 결국 설명을 못 듣고 거기서 나왔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 감람나무는 강태온 목사님이 쓴 책 속에 있던 얘기를 다 하시더군요.

집에 와서 아들들을 모아놓고, “내가 아버지 말 듣고 청량리 성바오로 치과병원 4층에 있는 조그마한 교회에 갔는데, 요한 계시록 설교를 참 잘하시더라. 우리 거기 나가자.” 하니까, “엄마가 전도관에서 우리를 낳아서 지금까지 잘해 왔는데, 전도관에 안 나가고 에덴성회를 나가면 우리를 도깨비라고 할 거고, 우리는 전도관에도 못 나가고 마귀가 될 텐데요.” 그러면서 야단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들 보고, “그럼 너는 4중앙에 가서 박 장로님이 뭐라고 설교를 하나 듣고 와라.” 그렇게 자식들이 가로막아서 청량리 에덴성회에 못 나갔습니다.

그 뒤 하루 종일 누군가 목도리로 목을 졸랐습니다. 그래서 밥도 못 먹고 물도 못 먹었는데, 자식들이 엄마, 왜 그러느냐고 해서, “너희들이 제단에 못 가게 해서 그런다.”고 하니까, 엄마가 죽으면 안 되니까, 거기가 도깨비라고 해도 가라고 했습니다. 아들 보고, “박 장로님 말씀 듣고 오면, 얘기 들어보고 결판을 내자.” 했는데, 아들이 듣고 와서는, 이영수 감람나무는 도깨비라고 하고, 거기 생수도 못 먹게 하고, 그걸 먹을 바에는 차라리 똥물을 먹으라고 막 쳤다는 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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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9

니다. 엄마 때문에 우리 식구 다 큰일 났다고 그러더군요. “그래도 어쨌든 아버지가 받아 온 생수 먹으니까 살겠고, 축복 받으니까 살겠다. 내가 오늘 영애가 못 가게 해서 못 갔는데, 다음 주에는 나가라고 했으니까 나갈 거다. 너희도 다 나가야 돼.” 해서 그때부터 에덴성회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때가 1974년 12월 초였습니다.

1987년 알곡성전 완공 후, 저는 기쁜 마음으로 봉사를 했습니다. 동산 주변을 정리하고 가꾸며, 꽃도 심고, 계곡도 정리할 때입니다. 계곡에서 세숫대야에 돌을 주워 나르는데, 성전 앞모습과 주발봉이 제 시야에 들어왔습니다. 그 순간 이곳이 내가 19세(1944년)와 27세(1952년) 때 이상 중에 와 본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 본 이상들이 생각이 나면서, 감동이 복받쳐 감당 못하게 눈물이 쏟아져, 얼른 사람 없는 곳으로 피해, 물소리 나는 계곡으로 가서 소리 내어 울었습니다.

그동안 잊고 살았던 장면들이 생생하게 다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1991년에 아파트가 건설되면서 이상 중에 본 장면들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다시 한 번 놀랐습니다. 1999년에 아들 명선의 집에 들어와 살면서, 저녁에 성전으로 산책하러 올라가면 광장에서 향취가 나고, 내려올 때 향취가 났습니다. 내가 꿈에 봤던 곳에 들어와 살고 있다니! 늘 감사한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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