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1

앉았습니다. 그러나 차고 있던 손목시계만 박살이 났을 뿐 몸에는 다친 데가 전혀 없었습니다. 이것은 주께서 도와주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었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놀랍던 하나님의 역사가 차츰 기울어지기 시작하고 형제들의 사랑이 식어 가더니, 서울에 7인 위원회가 조직되어 기혼자와 미혼자 교역자를 차별하고 그들의 행패가 심해지자, 나는 미국에 가서 공부하고 돌아와 신앙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크게 활동하려는 생각에서 단을 내놓고, 여권 수속을 밟았습니다. 나는 로스앤젤레스의 모 학교에 미리 등록 절차를 마치고, 불원 미국으로 떠나게 되었는데, 길에서 우연히 휴직 중에 있는 지금의 주의 종(이영수 총회장)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전도사 시절부터 잘 아는 사이라, 다방에 가서 이런저런 얘기 끝에, 내가 미국에 가게 되었다는 말을 하고, 그쪽에 가서 초빙할 터이니 나를 뒤따라오라고 자랑스럽게 으스대면서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이 전도사는 빙그레 웃으면서, 자기는 할 일이 따로 있으니 그런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실로 등골이 싸늘할 지경입니다.

그 후에 나는 주의 종을 자주 만나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하루는 지금의 김해성 전도사님과 셋이 영천 카네기 다방에서 이야기 끝에, 주의 종께서 내가 세상에 물들어 술을 한두 번 마신 것을 충고하면서, 다른 것은 다 좋은데, 술만은 제발 입에 대지 말라고 당부하고, 박 장로님의 치리에 대해 그 장단점과 신앙촌에서 되어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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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1

고 있는 일들에 관해 소상히 설명하신 다음, 정색을 하더니, “앞으로 내가 큰일을 하게 될 테니, 그때에는 함께 손잡고 일하자.”고 말씀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 ‘큰일’이 무엇인지도 미처 모르고, 의사가 통하는 사이라 거침없이 “그렇게 합시다.” 하고 선뜻 대답했습니다.

이야기를 마치고 주의 종은 가시고 나와 김해성 씨 둘이 다방에 남아서 “이 전도사가 말하는 큰일이란 대체 무엇일까?” 하고 궁금히 여기다가, “큰일이란 성경에 기록된 감람나무의 사명밖에 더 있나? 그렇다면 자기가 한 감람나무가 된단 말이 아닌가?” 하고 김해성 씨에게 말했더니 “글쎄.” 하면서 어물어물했습니다.

여담이지만 나도 한동안 은혜가 강하게 계속될 때에는 “성경에 기록된 두 감람나무의 하나가 되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느냐?”는 엉뚱한 생각에서 더욱 하나님께 매달린 적도 있었지만, 감람나무란 물론 자기가 되려고 노력해서 되는 것이 아님을 지금은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나는 그 후에 시간이 있으면 간혹 주의 종의 집에 가서 함께 자기도 하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나누기도 했으나, 당신의 정체에 대해서는 일체 내색을 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주의 종의 성격이 솔직 담백하여 모든 것을 흉허물 없이 곧잘 털어놓는 분이기에, 나이는 6세나 아래였으나 존경해 왔습니다.

그동안에 미국행도 가정 형편으로 흐지부지 되어 버리고 나는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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