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5

전도관을 계속 나갔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박 장로님이 오셨습니다.

전도관에서는 남녀가 좌우로 따로 앉아 있었는데, 그 가운데로 박 장로님이 걸어가시는데, 향취가 진동을 했습니다. 향취와 함께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장로님이 단에 서서 찬송가를 부르시는데, 그동안 귓등으로만 스쳐듣던 찬송가가 가슴 벅찬 감동으로 밀려왔습니다. 예배를 마치고는 축농증이 있는 사람과 말을 더듬는 사람이 있으면 나오라고 했습니다. 그 사람들을 세워 놓고 ‘쉭, 쉭’ 하고 기운을 부니, 코가 막힌 사람이 코가 뚫리고, 말을 더듬는 사람이 말을 술술 했습니다. 동네에서 귀신 들린 듯이 이상한 행동을 하던 사람이 몇 명 있었는데 이 사람들도 박 장로님이 오셔서 쉭쉭하며 귀신을 쫓으니, 모두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감동을 받고 하나님의 은혜를 내 눈으로 확인하니, 안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후부터 저는 건달생활과 친구들을 모두 정리하고 전도관을 열심히 다녔습니다. 한번 하기 시작하면 물불을 안 가리고 하는 성격이라, 한 번도 빠짐없이 새벽예배에 참석하는 등, 열성적으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제가 전도관을 열심히 다니자, 어머니가 반대를 심하게 하셨습니다. 반대하시는 어머니께 “전도관 다니면서 제가 남들과 싸운 적이 있습니까? 아니면 파출소에 불려간 적이 있습니까? 신앙생활 덕분에 잘못된 과거를 모두 청산하고 새사람으로 살고 있는데, 어머니는 왜 반대만 하십니까?”라며 간곡히 말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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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5

렸지만, 핍박은 더 심해져 집에서 쫓겨났습니다. 그 후로 더욱 열심히 신앙생활에 매진했고, 전주전도관 건축에 처음부터 끝까지 참여하였습니다. 이후 1959년에 전도사로 발령받아, 1963년까지 활동을 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박태선 장로님이 전도사 발령을 내는 것이 아니고, 협회에서 자기들 가까운 사람은 좋은 곳으로 보내고, 그렇지 않으면 어려운 곳으로 발령을 내는 것을 보고 실망하여, 전도사를 그만 두었습니다.

서울에 올라가면 돈을 좀 벌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28세 때 서울로 상경을 했습니다. 홍은동에서 과일 장사를 하는 친구가 있어서 이 친구 따라 과일 장사를 했습니다만, 생활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의정부 미군부대에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의정부에서 아내를 만나 1968년에 결혼을 했습니다.

서울 생활을 하면서 한때 그렇게 열심히 했던 신앙에서 멀어지고, 박 장로님이 14만 4천이 되려면 배지를 사라고 헌금을 강요하여 실망하던 차에, 전도관에 대해 좋지 않은 소식도 듣게 되어 전도관에 나가지 않게 되었는데, 신앙에 대한 목마름은 있어서 기성 교회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조그마한 개척 교회였는데, 목사가 저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이었습니다. 전도관에서 전도사로 활동하던 그 열심을 조금 내었더니, 개척 교회라도 사람이 꽤 많이 모이게 되었습니다.

저의 활동 덕분에 교회가 부흥되고 제 말을 사람들이 경청하고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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