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9

부터 수요일과 주일날을 제외하고 매일 밤 가정예배를 보았습니다. 생수 축복을 해주시는 목요일은 하나님의 사람께서 옥고를 생각지 않으시고 생수를 축복해 주신다는 생각에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찬송을 부르고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하루 속히 자유의 몸이 되시기를…. 그러던 중 12월 25일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해의 성탄절은 우리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하는 절기였습니다. 주인 없는 집에 손님으로 온 것처럼, 빈 단상을 바라보면서, 옥고를 치루고 계실 하나님의 사람의 고통스러운 모습이 연상되었습니다. 진실로 가슴이 메는 것 같은 아픔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사람께서 빈 단상에 모습을 보여주실까 하고 생각하니, 안타깝기만 했습니다.

성탄절이 지나고 12월 31일 망년회를 맞이하는 날, 그날이 바로 제 일생에 가장 중요한 날이었습니다. 인천 제단에서는 해마다 12월 31일이 되면 밤 12시에 새해맞이 예배를 보았습니다. 지난해에 못 다한 일들을 새해에는 더 열심히 하자는 뜻으로 인천 성도님들은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예배가 끝난 후에는 새해의 희망찬 출발을 위한 간단한 다과회가 있었기 때문에 당시의 학생회 부회장인 윤현미와 함께, 나는 다과를 준비하기 위해 배다리슈퍼로 향했습니다.

가는 도중에 부회장의 친구 집에 들러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갑자기 머리가 돌처럼 무거워지며 네모반듯한 방이 제 머리 위를 빙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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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9

돌았습니다. 바람을 쐬면 나을 것 같아 밖으로 나왔는데, 이미 저의 한쪽 발이 안쪽으로 비틀어져 있었고, 구역질이 나서 토하며, 몸은 제대로 움직이기가 힘들 정도로 불편하고, 머리는 깨어지는 듯이 아팠습니다. 저는 제단에 가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정신없이 길을 찾아 나왔지만, 몸이 지쳐 있었기 때문에 돌 의자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때 부회장과 친구들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두 언니들의 부축을 받으며 제단에 들어왔을 때, 예배를 인도하시던 이춘희 성회장님께서 깜짝 놀라 저를 성회장님 방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저는 성회장님의 방에 들어가서도 계속 토하고 머리의 통증은 더 심했습니다. 그 후 저는 완전히 정신을 잃었습니다.

이제부터 쓰는 글은 저를 지켜보신 어머님과 언니들, 그리고 여러 성도님들에게 들은 것입니다. 성회장님의 방에서 인천 화수병원으로 저를 옮겨 놓고, 학생회장(윤성노)이 어머님께 연락을 했다고 합니다. 처음엔 어머님께서 곧이듣지 않았으나, 학생회장의 초조한 태도가 심상치 않아, 무슨 일이 생겼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주님께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주님께서 필요로 하실 일군이라면 살려 주시고, 있으나마나한 인간이라면 차라리 그 생명을 거두셔도 한이 없습니다.”라고 말입니다. 그런 가운데 화수병원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죽은 시체와 같았다고 합니다.

화수병원 원장님은, 고칠 수가 없으니 어서 나가라고 했답니다. 그래서 이길여병원, 홍내과, 기독병원, 도립병원을 전전했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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