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9

고칠 수 없다는 말 한마디로 거절을 당했다고 합니다. 이춘희 성회장님께서는 한의원에 가보자고 하시기에 잘 아신다는 한의원에 갔습니다만, 역시 원장 되시는 분이 살 가망이 없다고 하면서, 어서 죽기 전에 집으로 가라고 했답니다.

아침 10시쯤 해서 이춘희 성회장님께서 오셔서 아무래도 심상치 않으니 병원에 입원을 시키라고 말씀하셨답니다. 1월 1일 저녁 4시쯤 해서 다시 인천 도립병원에 입원을 했습니다. 성회장님과 이백순 장로님, 권사님들과 학생회 회원들이 진찰의 결과를 알기 위해 초조하게 기다리고 계시는 것을 볼 때, 저의 어머니께서는 감사하면서도 죄송스러웠다고 합니다.

처음 결과는 뇌출혈과 뇌막염이었는데 이 결과가 확실치 않아 의사들은 고민을 했고, 병원 측에서는 성의를 다 하느라고 했지만, 날이 갈수록 병은 악화되어 갔습니다. 장정이 두 손으로 관자를 눌러도 머리는 빠개져라 아프고, 몸부림치며 머리칼을 잡아 뜯고, 먹지도 않았는데 계속 토하고, 정말 눈뜨고 바라 볼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병원 측에서는 소아과, 정신과, 내과 박용재 박사님과 서울대학병원 김 모 박사님을 초청해서 종합 진찰을 한 결과, 뇌종양(뇌암)이라는 무서운 병명이 나왔습니다. 그런 중에서도 어머니는 뜨거운 불의 은혜가 병원을 전전할 때부터 계속 강력히 연결되어, 주님께 감사를 드렸다고 합니다.

저희 큰 형부(신경희 집사)께서 하나님의 사람께 면회를 갔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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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9

우리 은화가 병이 들어 죽게 되었으니 살려 주십사고 울면서 애원의 말씀을 드렸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께서는 아무 걱정 말라고 하시면서, 오늘 저녁에 기도할 테니 그리 알라고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사용하시던 흰 손수건을 형부를 통해 보내주셨습니다. 그 손수건을 제 머리에 얹어 놓고 저녁이 되기만을 기다렸답니다. 그때 그 자리에는 문병오신 여러 성도님들도 함께 있었다고 합니다.

저녁 무렵, 송장같이 죽었던 제 볼이 갑자기 홍조를 띄고, 입술이 빨간 꽃이 피듯 하며 눈을 뜨더니, “엄마 나 배고파. 생수 좀 줘.” 하고 말했답니다. 그래서 문병 오신 성도님들과 온 가족이 주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리고, 다 같이 울었다고 합니다. 그 추운 겨울에 옥중에서 갖은 고생을 다 하시면서도 어린 가지 하나를 위하여 은총을 베풀어 주시는 것이 감사하고 송구스러워서였습니다.

그날이 1월 16일이라고 기억됩니다. 도립병원에서 저를 담당하셨던 박용재 박사님도 큰 기적이라고 말하면서, 참 신기하다고 했습니다. 만 명 중에서도 한 사람 살기가 힘든 뇌암에서 소생한 것은 도립병원의 경사라고 했습니다. 당시에 저는 천주교 학교인 박문여중 3학년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학교에서도 큰 기적이라고 하면서, 교장 선생님 이하 모든 선생님들이 무척 기뻐하셨습니다.

저는 소생한 그날부터 건강이 빨리 회복되었습니다. 1월 22일 퇴원을 하고는 집에서 온 가족들과 함께 감사의 예배를 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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