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9

하나님의 사람을 뵙고 싶어, 공판이 있는 날에 법원에 나갔습니다. 그러나 인사도 드릴 수 없었고, 먼 곳에서 하나님의 사람을 뵙고는 가슴이 아프고 감사하기도 하여, 눈물을 흘렸습니다. 몇 번이고 갔었지만, 간수들의 제지로 말씀도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께서 옥중에서 나오신 후 저를 보시고는, “무척이나 건강해졌구나.” 하시며 기뻐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앞에 선합니다.

그 후 6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날로 발전해 가는 현대 의학도 쩔쩔매는, 99%의 사망률을 가진 뇌암이라는 병을 저는 주님의 은혜로 고쳤습니다. 주님의 은총이 아니었다면 저는 썩은 육신이 되었을 것입니다. 다시 받은 생명만큼이나 값지고 보배로운 은혜가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제 감람나무의 굵은 가지로서 주님의 역사에 필요한 일꾼이 되리라 굳게 다짐합니다.

186 신앙간증담
Chapter 20

20. 원로성회장 김윤성

김윤성: 1926년생. 서울신학교에서 공부하고 감리교회에서 봉직하였다. 부모님의 권유로 안동전도관에서 목회를 하였고, 후일 목회를 쉬던 중, 전도를 받아 1979년 에덴성회를 나오게 되어 목회를 하였다. 2003년 퇴임했다.

출처: 간증담 2권(1987년)

나의 고향은 평남 용강군 삼화읍입니다. 부모님이 하나님을 믿고 계셨으므로 나도 자연히 교회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나는 어려서부터 목사가 되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그리하여 감리교 재단인 광성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여 학업에 충실하면서 교회의 주일학교에서 열심히 일했습니다. 왜정의 패망이 가까워진 1945년 대동아전쟁의 말기에 왜경의 횡포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신사참배를 강요당하여 우리 기독교인들은 많은 수난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왜경들의 박해와 감시 속에서도 목사님들의 신앙과 민족을 위한 투쟁은 계속되었습니다. 7월 장마철에 박재봉 목사, 이호빈 목사, 변종호 목사, 이용도 목사, 주기철 목사, 이성봉 목사님들을 따라 나는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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