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1

가리지 않고 횃불까지 켜들고 일을 했습니다.

나 역시 학교에 안 가겠다고 떼를 쓰다가 이듬해 4월에 시온중학교 1학년에 들어가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가르치는 선생님이나 배우는 학생들이나 돌봐주는 학부모나 모두가 건성이었고 형식적이었습니다. 공부는 대강하고, 돌멩이를 나르고 풀을 뽑고 지게를 지는 일이 우선이었습니다. 그래도 모두가 즐겁고 한마음 한뜻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박 장로님이 옥에 들어가시게 되자 공장이 잘 돌아가지 않게 되었고, 그로 인해 생활이 곤란하여 한때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죽을 먹어야 했고, 많은 사람들이 사회로 일자리를 찾아 흩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덕소신앙촌이 생기면서 그곳으로 이주하는 가구 수가 많아져, 소사신앙촌에는 빈집이 생겨났으며, 사회적으로 물들어 세속화되었고, 신앙심의 약화를 이유로 형편만 되면 모두 덕소신앙촌으로 떠났습니다.

소사신앙촌에 지도자가 없어지고 기강이 흐트러지자, 천부장인 황 권사가 총책임을 맡았습니다. 학생들은 다시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가정 형편상 학비가 안 드는 국립대학인 교육대학을 가야 했습니다. 시온고등학교에서는 우등상을 받았지만, 대학에 가보니 너무 실력이 떨어졌습니다. 폐쇄된 사회에서 영화 한 편 못 보고, TV도 보지 않고, 잡지 한 권 못 읽은, 사회와 격리되어 살아온 그곳 신앙촌 학생들은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았고, 특히 문화면과 사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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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1

과 일반 상식에서 뒤떨어지는 것이 너무 많았습니다. 부모가 신앙촌으로 입주하여 그런 폐쇄된 환경에서 내가 성장한 것이 원망스럽기도 했습니다.

사랑으로 뭉쳐 한곳(천성)을 향해 함께 간다면서도 연탄가스를 맡고 쓰러져 신음하고 있는 사람을 보고 마귀에게 씌웠다고 해서 피해 가는 사람들, 남의 단골을 빼앗아 자기 단골로 삼아 판매실적을 올리려는 보따리 장사 집사들, 자기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열성파들(?), 그곳은 뭔가 잘못된 집단의식이 형성되고, 삐뚤어진 신앙관이 심어진 곳이었습니다.

다시 기장신앙촌이 생기고 나서 소사신앙촌은 더욱 관심 밖으로 밀려나 사양길에 접어들었습니다. 그러자 내 마음속에서는 신앙심(信仰心)은커녕 점차 전도관에 대한 회의감(懷疑感)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시골학교 여선생이 되어 발랄하고 패기에 넘쳐, 사명감을 갖고 일해 보리라 마음먹고 부임을 했습니다. 12학급의 작은 경기도 이천 단월국민학교. 쌀이 좋아서 옛날 임금님께 진상했다는 부농인 그 마을이었습니다.

나는 그곳에서 참 행복했습니다. 무용을 가르치고, 풍금을 치면서 노래를 가르치고, 초롱초롱한 눈망울에 꿈을 심어 주고, 옛날이야기를 들려주고, 이끄는 대로 따라와 주는 천진난만한 아이들을 바라보며, 싱그러운 처녀로서, 아니 여교사로서 사회에 적응하며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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