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지 않고 횃불까지 켜들고 일을 했습니다.
나 역시 학교에 안 가겠다고 떼를 쓰다가 이듬해 4월에 시온중학교 1학년에 들어가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가르치는 선생님이나 배우는 학생들이나 돌봐주는 학부모나 모두가 건성이었고 형식적이었습니다. 공부는 대강하고, 돌멩이를 나르고 풀을 뽑고 지게를 지는 일이 우선이었습니다. 그래도 모두가 즐겁고 한마음 한뜻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박 장로님이 옥에 들어가시게 되자 공장이 잘 돌아가지 않게 되었고, 그로 인해 생활이 곤란하여 한때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죽을 먹어야 했고, 많은 사람들이 사회로 일자리를 찾아 흩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덕소신앙촌이 생기면서 그곳으로 이주하는 가구 수가 많아져, 소사신앙촌에는 빈집이 생겨났으며, 사회적으로 물들어 세속화되었고, 신앙심의 약화를 이유로 형편만 되면 모두 덕소신앙촌으로 떠났습니다.
소사신앙촌에 지도자가 없어지고 기강이 흐트러지자, 천부장인 황 권사가 총책임을 맡았습니다. 학생들은 다시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가정 형편상 학비가 안 드는 국립대학인 교육대학을 가야 했습니다. 시온고등학교에서는 우등상을 받았지만, 대학에 가보니 너무 실력이 떨어졌습니다. 폐쇄된 사회에서 영화 한 편 못 보고, TV도 보지 않고, 잡지 한 권 못 읽은, 사회와 격리되어 살아온 그곳 신앙촌 학생들은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았고, 특히 문화면과 사회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