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1

장하고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중풍에 걸리셨습니다. 신앙촌에서 결혼을 못하게 하여 만혼으로 가정을 이룬 오빠들이 사회로 나가 식구가 줄어들자, 어머니는 적적하시다고 나를 시온국민학교 교사로 오라고 강하게 종용하셨고, 날마다 기도생활로 나날을 보내셨습니다.

언니가 시골학교로 찾아와 어머니의 병세를 자세히 얘기하며, 소사신앙촌에 가서 어머니랑 같이 살자고 했는데, 마침 그곳 시온국민학교에 자리가 비어서, 나는 다니던 이천 공립학교를 그만두고 사립학교인 시온국민학교로 전근을 왔습니다.

내가 시온학교에 온 지 몇 달 안 되어, 나는 이곳에 잘못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곳 교사들 대부분은 공립학교로 가고 싶어 기회만 노리고 있었습니다.

공립학교에 있다가 시온학교로 온 지 6개월도 안 되어, 나는 이곳 분위기가 이상한 것을 느꼈습니다. 일반 사회에서는 극히 자연스러운 행동이 이곳에서는 색다르게 여겨지고, 교사 간에도 반목과 질시가 뒤따르며, 인간미라곤 전혀 없는 개인주의만이 팽배한 삭막한 곳, 무언가 한참 모자라는 사람들의 집단이었습니다.

나는 시온국민학교에서 2년 6개월 남짓 있다가, 서울 공립학교로 갈 수 있는 편입고사에 응시하여, 서울 여선생이 되었습니다. 나는 그제야 비로소 새 세상에 새로 태어난 것 같았습니다.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았고, 새롭게 보이는 것이 너무 많았으며, 감춰야 할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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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1

많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박동명 사건(카페에서의 골든벨 사건)이 언론에 대서특필되자 울분 같은 것을 느꼈고, 신앙촌의 보따리 장사꾼을 만나면 불쌍했고, 성도들의 피와 땀의 결실인 그 많은 돈을 박 장로 자식들이 양심의 가책 없이 물 쓰듯 하는 그 인간됨이 이만저만 고약한 것이 아니라는 것에 통분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재벌 2세들이 갖는 특유의 불량성 중에서도 최고의 불량성을 지닌 박 장로의 자식들. 큰 아들 동명은 나와 시온고등학교 동기동창이었습니다. 나는 잘못된 종교관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해왔다고 후회하며 허탈감에 빠져서, 굴레 같은 종교관을 벗어 버리고 세상과 짝하니 너무 편안하고 즐거웠습니다.

나는 결혼을 했습니다. 내 앞에는 새 삶이 펼쳐졌습니다. 돈을 모으고, 집을 가꾸고, 아이들을 기르고, 바캉스를 떠나고, 전도관에서 금했던 복숭아와 삼겹살도 먹고, 주일이 없이 일요일도 내 것이 되어 일주일에 7일 모두를 가질 수 있어, 참으로 오붓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언니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어린 나이에 신앙촌에 입주하여 학업도 중단하고 그 테두리 안에서만 생활하다 불쌍하게도 세상을 먼저 떠났습니다.

나는 언니의 죽음을 통해 생수의 위력이 그토록 강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언니의 시신이 살아 있었을 때보다 더욱 아름답게 변화되어 있어 땅에 묻기가 아까울 정도였습니다. 나는 하나님이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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