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고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중풍에 걸리셨습니다. 신앙촌에서 결혼을 못하게 하여 만혼으로 가정을 이룬 오빠들이 사회로 나가 식구가 줄어들자, 어머니는 적적하시다고 나를 시온국민학교 교사로 오라고 강하게 종용하셨고, 날마다 기도생활로 나날을 보내셨습니다.
언니가 시골학교로 찾아와 어머니의 병세를 자세히 얘기하며, 소사신앙촌에 가서 어머니랑 같이 살자고 했는데, 마침 그곳 시온국민학교에 자리가 비어서, 나는 다니던 이천 공립학교를 그만두고 사립학교인 시온국민학교로 전근을 왔습니다.
내가 시온학교에 온 지 몇 달 안 되어, 나는 이곳에 잘못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곳 교사들 대부분은 공립학교로 가고 싶어 기회만 노리고 있었습니다.
공립학교에 있다가 시온학교로 온 지 6개월도 안 되어, 나는 이곳 분위기가 이상한 것을 느꼈습니다. 일반 사회에서는 극히 자연스러운 행동이 이곳에서는 색다르게 여겨지고, 교사 간에도 반목과 질시가 뒤따르며, 인간미라곤 전혀 없는 개인주의만이 팽배한 삭막한 곳, 무언가 한참 모자라는 사람들의 집단이었습니다.
나는 시온국민학교에서 2년 6개월 남짓 있다가, 서울 공립학교로 갈 수 있는 편입고사에 응시하여, 서울 여선생이 되었습니다. 나는 그제야 비로소 새 세상에 새로 태어난 것 같았습니다.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았고, 새롭게 보이는 것이 너무 많았으며, 감춰야 할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