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계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곳의 비리와 불합리한 생활이 싫어서 부인하고 있었습니다.
얼마 후에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고생만 하시다가 자식들이 저마다 살 만하게 되니 그만 떠나셨습니다. 어머니가 생전에 그토록 원하셨지만, 큰언니를 제외한 다른 형제들은 이미 종교인이 아니었습니다. 가정의 화목을 좌우명처럼 여기시던 분, 그분이 떠나시던 날은 삼복중에서도 가장 더운 중복이었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시신에서는 냄새 하나 나지 않았고, 아름답게 잘 피어서 편안히 가셨습니다.
시어머니(고 정향자 권사)께서 하루는 어떤 전도사를 따라서 에덴성회에 나가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나는 신혼 초라 내색은 할 수 없었지만, 속마음으로는 무척 못마땅했습니다.
‘교회에 나가시려면 일반 교회로 가시지, 하필이면 왜 또 전도관 흉내를 내는 그런 사이비 교회로 가신담? 아들이 마련해 놓은 집까지 팔아 바치고, 그것도 부족하여 어깨가 기울도록 보따리 장사를 하며 충성을 했건만, 지금 남은 것이 무엇인가? 그런데도 또 그런 곳으로 가시다니!’ 나는 한심한 생각이 들었고, 창피하기도 했습니다.
“학벌도 없고, 딴따라 출신인 그 사람이 어떻게 감람나무가 될 수 있습니까? 자신이 감람나무라고 자칭하는 곳은 모두가 이단이에요.”라고 시어머니를 극구 만류했습니다. 한 번 빠지면 돈과 자식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