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1

나는 간호사 물음에 주소, 이름, 나이 등을 또렷이 대었습니다. 한참을 더 기다리다, 호명을 듣고 진찰실로 들어갔습니다. 잘 꾸며지고 정돈된 방에, 의사는 나이가 약간 들어 보였습니다. 바로 전에 내 병세에 대해 남편과 잠시 이야기가 있었나 봅니다. 면담이 시작되었습니다.

“아주머니, 어디가 불편하세요?”
하고 의사가 물었습니다.
“아주머니라니요? 내가 선생이니까 선생님이라고 불러 주세요.”
“아, 그러세요.”
“저어, 내일이 저희 학교 출근일인데 내가 아프다고 이 사람이 나를 못 가게 합니다.”
“아, 그래요?”
의사는 뭔가 계속 기록을 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순간 정신이 혼미해지고, 또다시 신과의 접촉이 시작되었습니다.
“야! 네까짓 게 뭘 알아? 그래도 서울대학을 나왔다고? 내 동생도 서울대학을 나왔어. 네까짓 것 10명이 다 덤벼들어도 나를 고칠 수 없어. 가서 더 많은 의사들을 불러와!”

하고 나는 갑자기 의사를 향해 소리를 쳤습니다. 나는 간밤에 서울대학을 나온 많은 의사들이 여기저기 모여서 의논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남편이 밖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내가 소리치는 것을 듣고 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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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1

어 들어왔습니다.

“여보! 집에 불이 났어요. 큰일이에요. 빨리 집에 가요, 네? 가스를 잘못 켜서 불이 난 거에요. 커튼 뒤에다 내 반지를 매달아 놨어요. 집이 타들어 가는데, 빨리 집에 전화를 해야겠어요.”

하고 나는 의사 앞 테이블에 놓인 수화기를 확 끌어당겼습니다.
“이것 보세요! 내가 미쳤다고요? 우리 집 전화번호가 993에 4056이에요.”
하며 급히 다이얼을 돌렸습니다. 그러나 계속 통화 중이었습니다.
동네 사람들, 학부모들, 선생님들이 모여서서 불구경만 하고, 불을 끌 생각은 하지도 않고 있었습니다.
“여보! 내 반지를 아까 그 시커먼 사람이 훔쳐가려고 해요. 창문을 기웃거려요. 커튼이 막 타들어 가는데 사람들이 불을 끄려하지 않아요.”

나는 발을 굴렀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나는 진찰실 문을 박차고 뛰어나와 버렸습니다. 이것은 내가 환상 속에서 본 생생한 영상과 같았습니다.

의사는 더 이상 면담이 되지 않자, 나의 진찰을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대기실로 뛰어나와 아무렇지도 않게 가만히 앉아 있었습니다. 영상이 끝났기 때문이었습니다.

남편이 의사와 상담을 하고 한참 후에 나오더니,
“큰 병원으로 가서 입원을 시켜야 한대요. 증상이 아주 심하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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