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2

모시고 일주일간 부흥집회가 있었습니다.

나는 집회에 참석하여, 수많은 기사와 이적을 일으키고 병을 고치는 놀라운 성령의 역사를 직접 눈으로 보고, 귀로 들어, 하나님께서 살아 역사하시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생전 처음으로 신령한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멋모르고 쫓아다니던 장난기 어린 신앙 속에 주의 성령이 들어와 역사하시니, 이제부터는 죽으나 사나 주님을 따르겠다는 결의와 각오로 열심히 교회에 나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사양하지 않았습니다. 주일날 새벽기도가 끝나면 도립병원 환자 위문(학생회 주최로 찬송과 기도, 그리고 성경 말씀으로 입원 환자를 위로해 주었음)으로 시작해서, 학생회 임원, 주일학교 반사, 성가대, 노방 전도도 하고, 심지어 주일날 오후에는 시골 개척 교회 주일학교 예배 인도까지 자청하여 다니게 되었습니다. 새벽부터 밤이 늦도록 정신없이 쫓아다니다 보면 밥 먹을 시간도 없어 굶기가 일쑤이면서도, 마음속엔 기쁨이 용솟음쳐서 그저 감사하고 즐겁기만 했습니다.

이렇게 되니, 예수를 믿으면 나쁜 짓 안 하고 부지런히 공부도 더 잘할 줄로 알고 은근히 교회에 다니는 것을 도와주시던 아버님께서 핍박을 하셨습니다. 하라는 공부는 뒷전이고 예수에 미쳐서 밤낮 없이 쫓아다니는 것도 못마땅한데다가, 설상가상으로 내 위로 7남매를 잃고 노년에 얻은 귀염둥이 3대 독자가 조상의 제사조차 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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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2

지 않겠다고 나서니, 아버님의 노여움은 극에 달하셨습니다. 처음에는 달래도 보고, 위협도 하시다가 나중에는 심한 매질도 하셨는데, 그래도 굴복하지 않으니 집안은 하루도 평안할 날이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결국 “너 같은 놈은 자식으로 인정치 않겠노라.”는 선언을 하시게 되고, 매일같이 술로 화를 달래시다가 끝내는 화병으로 세상을 떠나시고 말았습니다.

아버님께서 돌아가시고 나니 생활은 점점 어려워졌으나, 남의 집 가정교사, 상점의 점원 노릇을 해가면서도 주의 일에는 더욱더 열을 올려 충성하였습니다. 그러나 뜻밖에도 한국 기독교연합회의 성명의 여파는 청주에까지 밀어닥쳐, 충북 노회에서도 “박 장로는 이단이다.”라는 선언을 하게 되니, 한창 은혜 받고 기뻐하던 교인들은 당황하게 되고, 목사님과 장로님들을 비롯한 교인들까지도 은혜파와 노회파, 그리고 이쪽도 저쪽도 아닌 눈치파로 3분되어, 은혜롭던 교회는 모이면 싸움이요, 큰 소리가 그치지 않았습니다. 결국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박 장로님을 지지하는 몇몇 식구들이 정든 교회를 박차고 나와, 이 집 저 집으로 쫓겨 다니며 예배를 보기 시작한 것이 청주전도관의 탄생이었습니다. 이렇게 되니 안 믿는 부모들은 물론이요, 엊그제까지 함께 은혜를 받았다고 기뻐하던 교인들까지도 이제는 원수가 되어 핍박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와 같은 시련 속에서 처녀들은 부모 몰래, 장만해 두었던 혼숫감과 패물들을 모아 팔아서 청주시 우암동 대마공장(지금은 청주방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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