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옆에 낡은 20여 평의 초가집을 사서, 벽을 헐어 내고 가마니를 깔고 제단을 마련했습니다. 첫 예배를 드리던 날,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479장) 찬송을 눈물로 목이 터져라고 부를 때의 그 감격, 그 기쁨은 마치 하늘에라도 오를 듯했습니다. 청주전도관이 개관 날짜를 정하고 박 장로님의 허락을 받고자 고등학생인 내가 서울 원효로에 있는 장로님 댁을 방문했습니다.
그때는 이만제단을 짓기 전이어서, 원효로 공장 2층에서 예배를 보았는데, 청주에 와 주실 것을 말씀드렸더니, 장로님의 말씀이 “남산집회, 한강집회, 운동장집회 등 집회 때마다 수만 명씩 모여 부흥회를 하던 박 장로가 이제 다 찌그러진 초가집에서 집회를 하면 세상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고, 하나님께도 덕이 되지 않으니, 다른 곳을 마련해 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청주에서는 오실 줄로 알고 준비를 하고 있는데, 못 오신다면 큰일이라고 생각해서 울며불며 청주의 딱한 사정을 말씀드리니, 난처한 얼굴로 계시다가 마지못해 허락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1956년 예정된 날짜에 주의 종을 모시고 은혜의 창파 속에서 개관 집회를 마치자, 시내 각 교회에서 목사님들의 강경한 반대와 만류를 뿌리치고 은혜 받은 교인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날이 갈수록 제단이 차고 넘쳐서, 우암산 중턱에 터를 사서, 청주 시내 어느 교회보다 큰 제단을 짓는 공사가 시작되었습니다. 학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