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2

를 몇 달간 계속 드렸습니다.

그러나 전도관도 일반 교회도 아닌 상태에서 언제까지나 계속할 수도 없어, 모두가 의논한 끝에 11년 전에 우리가 버리고 나왔던 장로교회 (외덕교회, 지금은 우암교회로 개칭)로 돌아가기로 합의를 보았습니다.

우리가 우암교회로 되돌아가는 날, 저들은 열렬하고 뜨거운 환영을 하며 우리를 반겨 맞아 주었으나, 당장에 하늘에라도 오를 듯 의기양양해서 뛰쳐나왔던 우리가 11년 만에 패잔병처럼 힘없이 고개를 떨어뜨리고 옛 교회로 되돌아오니, 부끄럽고 쑥스러워 얼굴을 들 수가 없었습니다.

의자에 앉아서 편안히 예배를 보아도 가마니 위에서 무릎을 꿇고 앉은 것보다도 마음이 편치 않고, 찬송을 불러도 은혜롭지 않으며, 기도를 해도 마음은 답답하고, 설교를 들어도 감동이 없으니, 교회에 가고 싶은 생각이 점점 없어져, 나는 당분간 쉬기로 작정했습니다. 아내와 아이들은 그대로 다니게 두고, 나 혼자만 떨어져 사회에 나와 보니, 학생 시절부터 하나님과 주님, 감람나무밖에 모르던 사람이 그 모든 소망 줄이 끊어져, 자연히 의지할 곳이 없어 허무감과 허탈감으로 술과 담배를 가까이하게 되었습니다. 급속도로 세속에 물들어가며 방황하는 중에 낚시에 취미를 붙이게 되어, 시간만 나면 호수로, 강으로, 바다로 나서게 되고, 신앙과는 점점 떨어져만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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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2

어쩌다 술이 얼큰하여 집에 돌아와 보면 집사람이 흥얼거리며 찬송을 부르는 소리를 듣다가는 옛날의 은혜 받던 그 시절이 그리워서 나도 모르게 찬송을 따라 부르다가, ‘내가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나?’ 싶어, 하염없이 눈물이 솟구쳐 나오는 것을 억제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집사람은 옳다, 때가 왔구나 싶어, “여보, 이제 당신도 그만 쉬고, 다음 주부터 교회에 나갑시다.” 하고, 아이들까지 합세하여 “아빠, 우리도 주일날 같이 교회에 나가.” 하면서 보채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그래, 아빠가 지금은 방학 중이라 쉬고 있지만, 다음에 개학을 하면 나갈 테니, 지금은 너희들이나 열심히 다녀.” 하고 대답하곤 했습니다.

“아빠는 언제 개학하는데?”, “아빠 방학은 왜 그렇게 길어?” 하던 것이 장장 16년. 그토록 가족들과 목사님이 새벽기도마다 빼놓지 않고 10년이 넘도록 기도해 주었는데도 돌아설 마음이 없었는데, 1983년 4월 어느 날, 국민학교 때부터 이웃에 살면서 같은 학창 시절을 보내고 전도관에도 같이 다녔던 김상순 집사에게서 저녁에 만나자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낮에 많이 마신 술기운도 아직 가시지 않은데다 피곤하기도 했지만, 하도 오래간만에 만나자는 전화이고 해서 약속한 다방에 나갔습니다. 김 집사가 낯선 사람을 데리고 와서 소개를 하는데, 옛날 천안전도관 전도사였다면서 인사를 하고 보니, 박상석 성회장님이었습니다.

그때는 반갑지 않은 사람이고 해서 건성으로 몇 마디 대답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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