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3

23. 원로성회장 송원익

송원익: 1938년생. 일반 교회를 다니다가 1955년 부친을 따라 박태선 장로를 따랐다. 은혜를 체험하고 특별전도대로 활동하였으나, 1980년 박 장로의 변절을 보고 전도관을 떠났다. 1984년 전도를 받아 에덴성회에 몸담고 목회를 하였고, 2005년 퇴임했다.

출처: 간증담 2권(1987년)

나는 모태로부터 장로교회 교인이었습니다. 부친께서 27세에 예수를 믿기 시작하여, 1973년 9월 소사신앙촌에서 83세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부친의 신앙은 그 어느 사람들 앞에도 부끄러움이 없는 진실한 신앙인이었습니다. 아마도 소사신앙촌 분들은 실 장사 할아버지, 또는 실 장사 장로님 하면 모르는 분이 없을 줄 압니다. 별세하시기 약 4개월 전까지도 주일을 제외하고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빠짐없이 실 짐을 등에 지고 다니시던 분입니다. 때로는 거리에서나 신앙촌 안에서 50, 60세 되신 노인들이 어울려 소일하고 있는 것을 보시고는, 저렇게 멀쩡한 몸뚱이를 가지고 빈둥빈둥 논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을뿐더러, 도리어 주님 앞에 범죄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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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3

말씀하시던 분입니다. 육신이 성할 때에 부지런히 벌어서 주님께도 충성해야 된다던 그분의 신조를 나는 어려서부터 익히 듣고 배워 왔습니다.

6.25 이전, 이북 공산 치하에서도 주일이면 점포 문을 닫고 주일을 지켰으며, 특히 십일조에 대하여는 너무도 철두철미하셨던 분입니다.

장사를 하기 때문에 그날그날 십일조를 떼는데, 그 방법은 이러했습니다. 그날의 매상고 전액의 3할을 무조건 이익금으로 계산하여, 그 금액의 십분의 일을 따로 모아서, 한 달이 되면 어김없이 교회에 바치는 것이었습니다.

6.25 이후, 그러니까 1951년 5월경, 강원도 철원에서 저희 식구들은 남으로 피난길에 올랐습니다. 그 최종 정착지가 경남 마산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시에 마산에서는 제일 크다고 할 수 있는 문창교회에 적을 두게 되었습니다. 당시에 고려파로 인한 교회 분규는 이곳 문창교회에서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주일이면 양 파의 목사들이 윗단과 아랫단에서 각기 예배를 인도하는데, 한편이 기도하면 한편은 찬송하고, 교인들은 자기편에 맞추어서 예배를 보는 그런 식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젊은 청년들이 단상으로 올라가서 목사를 끌어내리면, 또 다른 단상의 목사도 그런 식으로 끌어내리는 예배가 매 주일 지속되었습니다. 때문에 부친께서는 몇 명의 피난민 교우들과 협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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