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3

시무하셨기 때문에, 그때의 상황에 대하여는 너무도 잘 아는 산 증인이 될 것입니다.

이같이 의기양양했던 감람나무의 역사가 어쩌면 이렇게도 변할 수 있단 말입니까? 1980년의 성탄절이야말로 너무도 한 맺힌 절기였습니다. 예수가 마귀, 아니 마귀대장이 되고 말았으니, 성탄절은 자동적으로 무효화되었습니다.

주님께 불순종한 벌로 박 장로님 본인이 피를 토하는 오만가지 병에 걸려 별스러운 약을 다 구해 복용하는 처지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해괴망측한 주장과 악한 일들의 연속이라니,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1981년 3월 이리전도관 관장을 마지막으로 미련 없이 그곳을 떠나 인천시 주안동에 정착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나 믿었던 감람나무의 역사가 변하여도 너무도 어이없이 추잡하게 변하여 버렸으니, 하늘도 땅도 맞부딪쳐 뭉개진들 이보다 더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 주님! 이 어이된 일입니까!” 가슴속의 공허함, 지나온 나날들의 후회스러움, 앞날의 생활에 대한 너무나 큰 부담감, 이 모든 것들을 얽매인 좌절감은 도저히 견디어 낼 수가 없었습니다. 영육 간에 처해진 현실에 대하여, 그리고 자신의 초췌한 모습이 저주스러울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근 20여 년을 멀리했던 술, 그리고 담배! 몇몇 타락한 교역자들이 모여서 나누는 술잔은 전도관 역사의 패잔병들이 나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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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3

쓴잔이었습니다. 여러 명이 모여 하나의 회사를 세워 운영해 보아도, 될 것 같으면서도 깨지는 데는 속수무책이었습니다. 부도를 막으려고 빌린 돈들이 빚으로 남아, 느는 것이 빚이요, 한숨이요, 마시느니 술뿐, 잦아지는 외박에 짜증내는 아내, 안과 밖으로 쌓이는 것은 고독과 환멸과 증오뿐이었습니다.

“그래, 차라리 죽어 버리자. 이왕 죽을 바에는 빚이나 갚도록 보험이나 들자.”

그래서 3000만 원짜리 VIP 보험을 연간 불입액 10여 만 원을 지불하고는, 전차나 버스를 탈 때마다 ‘부딪치면 끝이 나는데’, 하면서 하루하루를 지내던 나날들이야말로 죽음 바로 그 생활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마 1982년 10월경이었습니다. 신설동 로터리에서 하천석 선교원장을 만났습니다. 10여 년 만에 정말 우연히 만난 것입니다. 무척 반가웠습니다. 우리는 서로 손을 잡고 근처의 다방으로 갔습니다. 물론 나는 저분이 소위 이영수 패에 갔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1중앙에서 존경했던 관장님이었기에 지금에 와서 그런 것 가릴 필요가 없었습니다. 또 최병식 장로도 왔습니다.

원체 예전부터 절친했던 관계로 무척 반가웠습니다. 하지만 그분들이 주장하는 이야기는 듣고 싶지도 않았고, 말하기도 싫었습니다. 감람나무의 역사가 무너진 마당에, 또 다른 무슨 나무 운운하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다음의 기약도 없이 한 잔 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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